[카다피의 종말]‘포스트 카다피’ 구심점 미약… 부족간 내전으로 번질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3일 03시 00분


■ 리비아의 미래는

리비아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이끌고 갈 주도적인 정치 세력이 없는 데다 반군 내부의 갈등과 수많은 부족 간의 반목 등으로 리비아가 극심한 내분에 빠져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 22일 리비아가 새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 경험 부족한 반군 지도부

카다피 축출이 이뤄지면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이끌 인물로는 무스타파 압둘 잘릴 NTC 의장이 영순위로 꼽힌다. 여기에 NTC 국방장관을 맡고 있는 오마르 알하리리와 야전사령관 칼리파 헤프티르 전 장군 등도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NTC는 카다피가 퇴진하면 헌법에 따라 8개월 안에 권력이양을 위한 선거를 치르는 등 집권 로드맵을 공개했다.

하지만 문제는 NTC 지도부의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NTC가 내부 혼란을 빨리 정비하고 안정을 찾아 민주주의로의 정권 이양을 이룰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중동전문가 앤서니 코즈먼 씨도 “아무 정치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통치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군 내부에서 아예 NTC를 합법정부로 부르는 것조차 반대하는 세력도 있다. NTC 내부에 한때 카다피 측근이었다가 합류한 인사들이 포진했다는 것이 이유다. 반군 핵심인사였던 압둘 파타 유니스 전 리비아 내무장관이 지난달 내부 반대 세력에 피살된 것은 내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부족 갈등에 따른 내전으로 이어지나

리비아는 크고 작은 500여 부족과 씨족으로 이뤄졌다. 이 나라 국민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국가가 아니라 출신 부족이나 씨족에서 찾는다. 카다피는 부족 간 경쟁을 유발해 서로 견제시키는 분할통치로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카다피가 족장을 맡은 카다파 부족과 현 정권에 깊이 연계된 마가리하 부족 등 10여 개 부족은 군, 정부, 경제계 요직을 대부분 차지해왔다. 카다피가 축출되면 이들 부족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불투명하다.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부족 중심의 리비아 사회에 야당, 시민사회, 노동단체 등 대안 세력이 없는 것도 우려 사항이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2일 “리비아 사태는 시민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렸다기보다는 부족과 씨족 갈등이 혼합된 결과”라며 “부족 갈등이 지속되면 내전으로 번질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잘릴 의장도 22일 알자지라 TV와의 인터뷰에서 반군의 보복행위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그는 “리비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세력이 있다”고 우려했다. 휴가지에서 서둘러 돌아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트리폴리에서 치안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카다피 지지세력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할지,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앞으로 리비아 안정에 위협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체포와 숙청 등 피의 보복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 득세 우려

이처럼 부족 갈등이나 내분이 확대될 때 이집트의 군대처럼 내부 혼란을 조정하거나 심판할 세력이나 장치가 없다는 것도 리비아의 고민이다.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가 조기에 자리를 잡은 것은 군이 과도 군정을 이끌며 평화적 정권이양을 뒷받침했기 때문이지만 용병 중심인 리비아에서는 군이나 경찰이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카다피 이후 힘의 공백을 테러 집단이 메울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인 교수는 “알카에다의 아류인 리비아이슬람전사그룹(LIFG)이 리비아 혼란을 이용해 세력을 키우면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도 없지 않다. 리비아 출신인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대의 엘 키키아 정치지리학과장은 “한번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되돌아가기 힘들다. 리비아 혁명으로 많은 사람이 자유를 찾았다”며 “리비아가 다시 독재를 받아들일 여지는 없으며 선거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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