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승컵 뒤엔 한국인 10년 뚝심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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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뒷바라지로 日여자축구 월드컵 우승 일궈낸 ‘아이낙 고베’ 구단주 문홍선 씨

지난달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을 누르고 기적 같은 우승 드라마를 쓴 일본 여자축구대표팀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한 재일동포 기업가의 숨은 열정이 있었다. 일본 여자축구 1부 리그 팀인 ‘아이낙(INAC·International Athletic Club) 고베’의 문홍선 구단주(60)가 주인공이다. 부동산 정보기술(IT) 외식사업 등을 운영하는 아스코홀딩스 회장인 그는 2001년 ‘지역에 밀착한 스포츠 진흥’을 기치로 아이낙 고베를 창단했다.

아이낙 고베는 1부 리그 소속 10개팀 가운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흥 명문. 팀당 연간 16경기를 치르는 1부 리그에서 올해 전반기에 8연승으로 무패 행진을 달리고 있다. 창단 11년째인 신생팀이 축구 강호로 우뚝 서는 데는 문 회장이 도입한 ‘전업(專業) 축구 시스템’ 효과가 컸다.

일본에서 여자축구는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이다. 남자축구가 대부분 프로팀인 것과 달리 여자축구 선수들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 한두 시간씩 호흡을 맞춰보는 아마추어다. 1부 리그에 등록된 선수 207명 가운데 프로계약을 한 선수는 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 회장은 2007년 가을 ‘전업 축구선수제’를 도입했다. 선수들에게 일일이 스폰서 기업을 찾아줘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 이들은 스폰서 기업의 홍보대사로 기업홍보 이벤트에 출석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서 운동할 수 있다. 문 회장은 창단 이후 10년 동안 15억 엔(약 2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재정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일본의 실력 있는 여자축구 선수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득점왕과 최우수선수를 차지한 사와 호마레(澤穗希) 등 축구대표팀 핵심 멤버 7명이 아이낙 고베 소속이다. 한국 여자축구 대표인 지소연(20) 권은솜(20)도 스카우트했다.

문 회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우승 이후 여자축구를 문전박대하던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며 “여자축구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씻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총련계 조선학교와 일본의 조선대를 나온 문 회장은 1990년대 초 북한과 하던 합영사업을 사실상 빼앗긴 뒤 북한에 환멸을 느끼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소망은 고국의 여자축구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것. 10∼14일 한국에서 열리는 한국 중국 일본 가나 4개국 팀 친선대회에 아이낙 고베를 참가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여자가 강하지 않습니까.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연합뉴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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