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도’ 불껐지만… ‘더블딥’ 불씨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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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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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협상 얻은 것-잃은 것

5월 24일부터 시작된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협상이 2개월여 만에 종지부를 찍으며 어렵사리 ‘국가부도’를 넘기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금융시장이 한시름을 덜었다. 협상 타결소식이 전해진 1일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증시는 상승장으로 끝났으며 유럽 주요 증시도 대부분 상승세로 출발했다. 시장의 훈풍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상으로 미국은 국가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고 국민들에게 정치 리더십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부채협상의 후폭풍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 이번 협상의 쟁점은?


합의안은 ‘10년간 지출은 2조5000억 달러↓부채상한은 2조1000억 달러↑’가 골자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 민주 공화 양당은 부채 한도 폭을 얼마로 늘릴지, 재정적자폭을 얼마나 줄일지 이견을 보였다. 결국 잠정합의안은 부채한도 상한선을 2조1000억∼2조4000억 달러로 하되 증액을 이번에 4000억 달러, 2단계로 올 연말까지 5000억 달러, 내년에 3단계 1조5000억 달러 식으로 3단계로 하겠다는 것. 민주당과 백악관이 원했던 일시 증액 대신 공화당 강경파가 끝까지 주장했던 다단계 증액을 여당이 받아들였다.

재정적자폭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민주당은 세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공화당은 지출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자고 주장했었다. 공화당 안에 건강보험 노인복지예산 등 복지예산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부채협상문제가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된 것.

결국 적자폭 감축에 대해 대통령과 양당 의회지도부는 2단계로 줄이겠다고 합의했다. 1단계로 향후 10년 동안 9000억 달러 삭감을 의회에서 즉각 승인하고 2단계는 1조5000억 달러를 추가로 감축한다는 것. 구체적인 감축 내용은 민주당과 공화당 동수로 구성된 12인 의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논의한다. 위원회에서는 11월 23일까지 감축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상·하원은 12월 23일까지 표결한다. 만약 위원회 안이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엔 1조5000억 달러를 국방 지출과 비국방지출에서 자동삭감한다. 백악관에 따르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장과 메디케어는 지출 삭감대상에서 제외된다.

○ 뭘 주고받았나?


부채한도 폭을 최대 2조4000억 달러까지 잡아 내년 대선 때까지 다시 추가로 올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은 백악관과 민주당으로선 큰 성과다.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예산 삭감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민주당으로선 성과다. 공화당은 그 대신 ‘부유층 증세 철회’를 얻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자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뜻을 꺾은 것이다. 공화당 지지층인 부유층을 결속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상처뿐인 영광


내년 대선을 의식한 여야가 막판까지 벼랑 끝 협상을 벌이면서 글로벌 금용시장에 미국 달러화와 국채에 대해 불확실성을 가져왔고 국민에게는 정치 무능과 염증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후폭풍을 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우선 신용평가회사들이 경고했던 신용등급 강등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신용평가회사들도 즉각 반응을 내지 않고 신중 모드다. 멜런 뉴욕은행(BNY Mellon) 수석통화전략가 마이클 울포크 씨는 “타협안은 단기대책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들이 찾고자 했던 장기 해법이 들어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회사인 핌코의 무함마드 엘에리안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협상타결로 당장은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려면 추가적인 재정개혁과 경제성장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부채상한선을 올리는 일이 1962년 이후 74차례나 있었던 의례적인 행사였음에도 유독 올해 주목을 받은 것은 정치 리더십의 부재와 막대한 정부 부채로 지탱해온 미국 경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공감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협상 타결이 ‘미봉책’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 더블딥 우려에 빠진 미국 경제

시급한 불은 껐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기다.”(뉴욕타임스). 무엇보다 미 경기회복이 침체국면이어서 재정지출을 통해 불씨를 지펴야 하는데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니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 실제로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당초 추정치보다 낮은 0.4%에 그쳤다. 지난달 29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1.8%)보다 훨씬 낮은 1.3%로 나왔다. 주요 투자은행들도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을 할 경우 경제가 회복동력을 잃고 다시 침체국면에 빠지는 더블 딥(경기회복 후 다시 침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RDQ이코노믹스의 존 라이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거의 제로금리인 상황에서 금리를 내려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을 쓰기도 어렵고 부채협상 결과를 감안할 때 재정지출도 힘들다”며 “결국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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