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물결’ 말레이시아 상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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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일당통치… “선거법개혁” 대규모 시위
경찰과 유혈충돌… 1명 사망-1667명 체포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9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1957년 독립 이후 54년간 집권하고 있는 국민전선(BN)의 장기 통치에 금이 가고 있다. 이날 선거법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베리시(청결) 2.0’의 주도로 5만 명(경찰 추산 1만 명)의 시민들이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벌여 도심이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말레이시아에서는 도심을 마비시킬 규모의 대규모 집회는 거의 일어난 적이 없다. 이번 시위 사태가 아프리카와 중동에 불고 있는 재스민혁명 열풍의 동남아시아 상륙 신호탄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 1667명을 체포하는 등 강경진압을 했지만 게릴라식 집회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퍼부은 최루탄과 물대포, 헬기를 동원한 물폭탄으로 1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시위를 주도했던 야당 지도자 완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도 부상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모나시대 제임스 친 교수는 “경찰이 쿠알라룸푸르 중심가를 봉쇄한 것은 1969년 인종폭동 이래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밝힌 체포자 명단에는 베리시 2.0 지도자들인 암비가 스리니 바산 의장과 마리아 친 압둘라 시민운동가, 야당인 PAS의 압둘 하디 아왕 대표도 포함돼 있다.

베리시 2.0은 성명을 통해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비난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국민이 정부의 방해와 탄압을 극복하고 시위에 참가해 국가와 정의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야권과 6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베리시 2.0은 “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14개 정당연합인 국민전선(BN)이 불공정 선거제도를 이용해 50여 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리시 2.0은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는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 매표행위 방지, 선거운동 기간 연장 등 선거법 관련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9일을 대규모 시위의 날로 정한 이 단체는 당초 경기장 집회는 허용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제안을 받아들여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경기장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정부가 지방 경기장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자 도심 집회를 강행했다. 시위대는 노란색 셔츠를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2007년에도 조기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여당이 1969년 이후 처음으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바 있다. 당시 시위에는 2만 명이 참가해 이번 시위보다 규모가 작았다. 말레이시아의 다음 총선은 2013년으로 예상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나집 라작 총리가 50% 이상의 지지율과 최근 10년래 최고를 기록한 2010년 경제 실적을 내세워 조기 총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금껏 총리가 자신에게 유리한 때를 선택해 총선 시기를 개인적으로 결정해왔다. 집권 여당은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족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립 후 10여 차례의 선거에서 계속 승리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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