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은 올해 중국 언론들은 공산당의 역사와 인물을 되돌아보는 특집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사진) 전 총리가 집중 재조명되고 있다, 런민(人民)일보도 16일 저우 전 총리의 ‘6가지 없음(6無)’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줬다고 보도했다.
첫째는 사망 후 유골을 남기지 않은 것. 저우 전 총리는 유언으로 ‘재 한 줌도 남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부인 덩잉차오(鄧穎超) 등 유족들은 화장 후 ‘농업용 비행기’에 유골을 싣고 저우 전 총리가 젊었을 때 혁명활동을 했던 톈진(天津)을 지나 보하이(渤海) 만 상공에 뿌렸다.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유골도 바다에 뿌려졌다.
둘째는 자식을 두지 못한 것. 중국에서는 ‘세 가지 불효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자식 없음’이라는 말이 있다. 부인 덩 여사가 유산한 뒤 다시는 갖지 못했다.
셋째는 관료 티가 없다는 것. 1949년부터 건국 후 초대 총리가 된 후 1976년 숨질 때까지 약 27년간 총리를 지냈던 저우 총리는 ‘세상에서 가장 평민화된 총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 출장 중인 저우 총리가 현지 대사관에 내복 빨래를 부탁했는데 여기저기 꿰매 누더기가 다 된 옷을 보고 대사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저우 전 총리는 한 번도 누구와 당파를 이뤄본 적이 없는 ‘무당파 정치인’이었으며 고생스러운 일은 도맡아 하되 누구도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고 런민일보는 칭송했다. 또 그는 죽으면서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아 말로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았다.
한편 미중 수교의 주역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발표한 저서 ‘중국에 대하여(on china)’에서 저우 전 총리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공자 같은 자연스러운 우아함과 일반인을 뛰어넘는 지혜를 갖췄다”고 극찬했다. 또 그는 저우 전 총리가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책에 반대 의견을 낼까 고민하면서도 의견 표명 때문에 쫓겨나지는 않을지 고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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