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카스트로… ‘52년 집권’ 쿠바 피델, 역사의 뒷길로 공식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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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암살시도를 피한 불사신도 세월 앞에선 별 도리가 없었다.

19일 14년 만에 열린 쿠바 공산당 제6차 당대회의 마지막 날. 트레이닝복을 입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85)이 연단에 깜짝 등장했다. 자신이 만든 공산당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나온 것. 그는 자리에 앉아 박수도 치고 동생이자 평생의 혁명동지였던 라울 카스트로(80)와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회의가 끝난 뒤 경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장 문밖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현대사 최장 집권 기록을 갖고 있는 독재자가 역사의 뒷길로 쩔뚝이며 퇴장하는 순간. 그나마 위안은 많은 당대회 참석자들이 눈물로 그의 뒷모습을 배웅해주었다는 점이다.

○ 6명의 아들 대신 동생에게 권력 이양

쿠바 최고 권력자로 52년간 군림해 오며 현대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피델 카스트로는 19일 마침내 모든 공직에서 공식적으로 떠났다.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과 군 통수권을 동생 라울에게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섰던 그는 공산당 제1서기직도 공식적으로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그 스스로는 이미 5년 전에 제1서기를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고 밝혀왔지만 쿠바공산당이 이를 공식 확인한 적은 없다. 그는 조언하는 원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1926년 농장주와 가정부 사이에서 혼외정사로 태어나 15세까지 정식 아들로 인정받지 못했던 피델 카스트로는 사생아라고 놀림을 당하며 시대의 반항아로 자랐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에 앞장선 이후 그는 작은 섬나라 쿠바를 반미국가로 변모시켜 최강대국 미국의 코앞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이어갔다. 그의 집권 기간 미국에선 무려 10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가 권력을 잡은 대부분의 기간은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권도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상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데 집착한 다른 독재자와는 달리 그는 동생에게 권력을 넘겼다.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혼외정사를 통해 여섯 명의 아들과 두 명의 딸을 두었다. 자식들은 과학자, 의사로 지내 권력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맏아들 디아스 발라르트가 원자력위원회 집행서기로 공직에 진출했지만 1992년 공금횡령에 연루돼 아버지로부터 직위를 박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라울의 쿠바, 실용 색채 가미할 듯

쿠바는 이제 공식적으로 라울 카스트로 시대가 열렸다. 형이 사회주의 원칙에 집착했었다면 동생의 쿠바는 실용 색채를 가미할 것으로 보인다. 6차 공산당대회에서 새 지도부 구성과 함께 300여 개의 혁신적 경제개혁안이 통과됐다. 개혁안 통과로 쿠바 주민들은 혁명 이후 50여 년 만에 주택과 차를 사고팔 수 있게 됐으며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있다. 또 공직자 100만여 명이 줄어들 예정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기본틀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쿠바가 중국식 사회주의를 모델로 삼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라울 카스트로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의 권력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울은 당대회 기간 자신을 포함한 고위 정치인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 말대로라면 향후 쿠바의 지도부 구성방식도 중국을 닮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10년 뒤면 라울이 90세가 되기 때문에 임기제한 발언은 자신의 집권기간 동안 무난하게 전체주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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