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 불길’ 어디까지]중동 민주화 물결 北에도 미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6일 03시 00분


탈북자 박사 4인의 분석 “北 청년장교들 울분 커져… 혁명 잠재력 있다”

탈북자 출신 박사 4명의 대담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왼쪽부터 박수현 안찬일 이애란 김병욱 박사. 이들은 “북한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 때를 대비해 탈북자들을 잘 교육시키고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탈북자 출신 박사 4명의 대담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왼쪽부터 박수현 안찬일 이애란 김병욱 박사. 이들은 “북한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 때를 대비해 탈북자들을 잘 교육시키고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가난과 범죄는 혁명의 어버이죠. 북한 군인들이 굶주린다는 데 특히 주목합니다. 청년 장교들이 울분에 떨고 있다는 것은 혁명 가능성이 잠재한다는 것이거든요. 체제 저항세력이 강한 지방에서 총을 가진 사람들이 결집한다면 촉발 변수가 될 것으로 봅니다.”

아프리카·중동의 민주화 열풍이 북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식량난을 먼저 언급했다. 외부의 시민혁명 소식보다 내부의 경제난이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듣고 있던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2일 동아일보 회의실에 모인 박사 4명은 모두 탈북자 출신이다. 안 소장과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박수현 묘향산한의원장, 김병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보좌위원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뒤 낯선 한국 땅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 박사학위를 땄다. 이들이 보는 지금의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변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잠재력은 있지만 쉽지는 않다”

▽김 위원=중동이 아닌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면 더 많은 영향을 줬을 거예요. 북한 주민들이 동요할 것은 틀림없지만 그냥 소문을 듣고 부러워하는 것과 ‘야, 우리도 투쟁하자’며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삐라 같은 것을 더 많이 뿌려서 북한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려야 됩니다.

▽박 원장=북한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볼 때 군인들이 들고일어나기는 참 힘든 구조예요. 식량난도 오랫동안 계속돼 온 문제라 새로울 게 없고…. 사실 중동사태는 먼 나라 얘기거든요. 그래도 지금의 상황이 어떤 식으로 번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이 원장=배급제가 부활하지 않고서는 김정은은 집권 못해요. 지금 북한 사람들은 당과 국가에 대한 고마움이 하나도 없어요. 모두 어머니가 장마당에 가서 벌어다 먹였는데 뭘….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중요해요. 지난해 말 중국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 소식도 북한에는 꽤 쇼킹했을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카다피나 무바라크도 잘 알아요.

▽안 소장=어려운 사정으로만 보면 벌써 혁명은 열두 번도 더 일어났을 겁니다. 북한이 대비를 잘해온 편이지요. 그래도 소수의 고위 엘리트만 빼면 다들 마음이 돌아섰어요. 동기 유발만 된다면 단숨에 돌아설 수 있는 게 민심이라고 봅니다. 철부지(김정은)가 대장 달고 거들먹거리는 건 말이 안 되죠.

○ “죽어가는 뱀 살리지 말아야”

▽이 원장=(북한에) 쌀을 절대 주지 말아야 해요. 그게 결국 김정일 김정은 주머니로 들어간다니까. 왜 죽어가기 직전의 뱀을 살려줍니까. 그러면 다시 사람을 물어요. 아무리 돕고 싶어도 그냥 꾹 참아야죠.

▽박 원장=저도 식량 지원에는 반대합니다. 남한에서 보낸 쌀이 청진항으로 들어왔을 때 당에서 ‘남조선 배가 지나가다 좌초돼 어쩔 수 없이 쌀을 처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사람들한테 제대로 나눠준 것도 아니에요.

▽김 위원=분배의 투명성을 이야기하지만 모니터링 요원들이 안 볼 때 다시 애국미로 내라면서 밤에 다시 다 가져가요. 안 내면 감방 가요. 결국 (분배) 방법이 개선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 “탈북자를 활용한 통일 준비를”

▽이 원장=북한이 굶주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의) 감정이 좀 다르다고 봐요. 2009년 화폐개혁 실패로 국가에 자기 재산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정보가 더 많이 공유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발이 가능할 수 있어요. 그때를 우리가 대비해야죠. 탈북자들을 공직과 민간의 여러 분야에 앉혀서 써 보는 식으로 ‘실험’해 가면서 활용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안 소장=맞아요. 북한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데, 이는 북한 내부의 혁명세력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는 셈이죠. 30만 대의 휴대전화로 정보 전달도 되고 있으니 조만간 체제 변혁 시도가 있을 거예요. 이를 앞두고 탈북자를 잘 키워 통일일꾼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남한 유전자도 북한 유전자도 아닌 ‘통일 유전자’를 가진 탈북자들을 통일 준비에 써야 합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좌담 참석 4인 프로필

△안찬일(57)=1979년 탈북. 1997년 건국대 박사. ‘1호 탈북자 박사’이자 탈북자 사회의 리더로 활발한 활동.

△이애란(48)=1977년 탈북. 2009년 이화여대 박사. 2010년 미국 국무부의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 수상.

△박수현(45)=1993년 탈북. 2010년 경원대 박사. 탈북 3형제가 모두 한의사.

△김병욱(48)=2003년 탈북. 2011년 동국대 박사. 부인도 박사 논문 끝내면 첫 탈북자 박사 부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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