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 박사 4명의 대담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왼쪽부터 박수현 안찬일 이애란 김병욱 박사. 이들은 “북한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 때를 대비해 탈북자들을 잘 교육시키고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가난과 범죄는 혁명의 어버이죠. 북한 군인들이 굶주린다는 데 특히 주목합니다. 청년 장교들이 울분에 떨고 있다는 것은 혁명 가능성이 잠재한다는 것이거든요. 체제 저항세력이 강한 지방에서 총을 가진 사람들이 결집한다면 촉발 변수가 될 것으로 봅니다.”
아프리카·중동의 민주화 열풍이 북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식량난을 먼저 언급했다. 외부의 시민혁명 소식보다 내부의 경제난이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듣고 있던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2일 동아일보 회의실에 모인 박사 4명은 모두 탈북자 출신이다. 안 소장과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박수현 묘향산한의원장, 김병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보좌위원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뒤 낯선 한국 땅에서 이를 악물고 공부해 박사학위를 땄다. 이들이 보는 지금의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변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잠재력은 있지만 쉽지는 않다”
▽김 위원=중동이 아닌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면 더 많은 영향을 줬을 거예요. 북한 주민들이 동요할 것은 틀림없지만 그냥 소문을 듣고 부러워하는 것과 ‘야, 우리도 투쟁하자’며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죠. 삐라 같은 것을 더 많이 뿌려서 북한 주민들에게 상황을 알려야 됩니다.
▽박 원장=북한 호위사령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볼 때 군인들이 들고일어나기는 참 힘든 구조예요. 식량난도 오랫동안 계속돼 온 문제라 새로울 게 없고…. 사실 중동사태는 먼 나라 얘기거든요. 그래도 지금의 상황이 어떤 식으로 번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이 원장=배급제가 부활하지 않고서는 김정은은 집권 못해요. 지금 북한 사람들은 당과 국가에 대한 고마움이 하나도 없어요. 모두 어머니가 장마당에 가서 벌어다 먹였는데 뭘…. 앞으로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중요해요. 지난해 말 중국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 소식도 북한에는 꽤 쇼킹했을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카다피나 무바라크도 잘 알아요.
▽안 소장=어려운 사정으로만 보면 벌써 혁명은 열두 번도 더 일어났을 겁니다. 북한이 대비를 잘해온 편이지요. 그래도 소수의 고위 엘리트만 빼면 다들 마음이 돌아섰어요. 동기 유발만 된다면 단숨에 돌아설 수 있는 게 민심이라고 봅니다. 철부지(김정은)가 대장 달고 거들먹거리는 건 말이 안 되죠.
○ “죽어가는 뱀 살리지 말아야”
▽이 원장=(북한에) 쌀을 절대 주지 말아야 해요. 그게 결국 김정일 김정은 주머니로 들어간다니까. 왜 죽어가기 직전의 뱀을 살려줍니까. 그러면 다시 사람을 물어요. 아무리 돕고 싶어도 그냥 꾹 참아야죠.
▽박 원장=저도 식량 지원에는 반대합니다. 남한에서 보낸 쌀이 청진항으로 들어왔을 때 당에서 ‘남조선 배가 지나가다 좌초돼 어쩔 수 없이 쌀을 처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사람들한테 제대로 나눠준 것도 아니에요.
▽김 위원=분배의 투명성을 이야기하지만 모니터링 요원들이 안 볼 때 다시 애국미로 내라면서 밤에 다시 다 가져가요. 안 내면 감방 가요. 결국 (분배) 방법이 개선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 “탈북자를 활용한 통일 준비를”
▽이 원장=북한이 굶주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는 (주민들의) 감정이 좀 다르다고 봐요. 2009년 화폐개혁 실패로 국가에 자기 재산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정보가 더 많이 공유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발이 가능할 수 있어요. 그때를 우리가 대비해야죠. 탈북자들을 공직과 민간의 여러 분야에 앉혀서 써 보는 식으로 ‘실험’해 가면서 활용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안 소장=맞아요. 북한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는데, 이는 북한 내부의 혁명세력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는 셈이죠. 30만 대의 휴대전화로 정보 전달도 되고 있으니 조만간 체제 변혁 시도가 있을 거예요. 이를 앞두고 탈북자를 잘 키워 통일일꾼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남한 유전자도 북한 유전자도 아닌 ‘통일 유전자’를 가진 탈북자들을 통일 준비에 써야 합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 좌담 참석 4인 프로필
△안찬일(57)=1979년 탈북. 1997년 건국대 박사. ‘1호 탈북자 박사’이자 탈북자 사회의 리더로 활발한 활동.
△이애란(48)=1977년 탈북. 2009년 이화여대 박사. 2010년 미국 국무부의 ‘용기 있는 국제여성상’ 수상.
△박수현(45)=1993년 탈북. 2010년 경원대 박사. 탈북 3형제가 모두 한의사.
△김병욱(48)=2003년 탈북. 2011년 동국대 박사. 부인도 박사 논문 끝내면 첫 탈북자 박사 부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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