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포효하는 중화제국]<2>패권외교의 힘은 경제에서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해외투자 5년새 10배 ‘거침없는 점프’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국 문화 축제 행사에 초청된 중국 베이징 101중학교 학생들이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국 문화 축제 행사에 초청된 중국 베이징 101중학교 학생들이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재대기조(財大氣粗).’ 부유하고 재산이 많아지면 말이나 행동이 거칠어진다는 말이다. ‘돈에 의지해 사람을 얕본다’는 뜻으로 최근 중국의 ‘패권외교’를 비유해 사용되기도 한다. 패권외교의 힘은 역시 크고 강한 경제력에서 나온다. 세계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제품 수는 중국이 단연 1위다. 중국의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는 이미 미국의 2배를 넘어섰다. 경제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약점으로 꼽혔던 중국의 내수시장 역시 최근 매년 10∼20%씩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투자유치국이던 중국은 이제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세계 5위의 투자대국으로 탈바꿈했다.》

○ 폭발하는 내수시장

중국 경제의 삼두마차는 투자와 소비, 수출이다. 이 중 중국의 약점으로 꼽혀온 것은 경제규모에 비해 무역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 하지만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분기점으로 중국의 내수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3일 오후 1시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에 위치한 인구 160만 명의 어얼둬쓰(鄂爾多斯). 1970년대만 해도 양과 말이 풀을 뜯는 초원이었지만 지금은 고층빌딩이 줄줄이 늘어선 첨단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2008년과 지난해 이곳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22.9%와 20.5%. 중국의 670여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07년 1만 달러를 넘어선 뒤 지난해에는 1만8000달러를 기록했다. 중국 정부가 내수시장 확대를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보하이(渤海) 만에서 무려 1000km 이상 떨어진 내륙의 중소도시가 새로운 성장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 중서부에 이런 제2, 제3의 어얼둬쓰가 줄줄이 생겨나면서 중국의 소비시장은 이제 세계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됐다. 중국의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1364만4800대로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의 1034만 대를 월등히 앞질렀다. 에어버스사가 기술 유출 우려에도 불구하고 톈진(天津)에서 중국 기업과 합작으로 항공기를 생산하기로 한 것도 향후 20년 내 항공기 수요가 3700대에 이를 정도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은 “중국의 국내 소비시장은 앞으로 매년 17∼18%씩 증가해 중국의 평균 GDP 증가율을 앞지르며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투자, 다시 활기

중국의 내수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최근 중국 시장을 겨냥한 외국 기업의 진출이 다시 크게 늘었다. 미국 델 컴퓨터는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를 거점으로 중국에 앞으로 10년간 1000억 달러(약 117조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전자 정보 제공업체인 IDC에 따르면 중국의 개인 컴퓨터시장 규모는 8100만 대로 내년까지는 미국의 8600만 대보다 뒤지지만 2012년엔 9700만 대로 미국의 8600만 대를 앞지를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판매량을 지난해 57만 대보다 18% 늘어난 67만 대로 늘려 잡았다. 현재 연간 60만 대에 불과한 연산 능력도 2012년엔 3공장을 지어 100만 대로 늘릴 예정이다.

중국엔 현재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진출해 있으며, 다국적 기업만 66만여 개가 영업 중이다. 외국 기업 연구개발(R&D)센터도 최근엔 1만2000개로 늘었다.

○ 세계시장 줄줄이 석권

초원도시가 국제도시로 중국 건국 61주년 연휴인 3일 네이멍구 자치구 어얼둬쓰시 번화가의 한 대형 상가 앞에서 전자제품 체인업체 직원들이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민생광장’ 간판에 한자와 병기된 문자는 몽골 문자. 30여 년 전만 해도 초원 위의 작은 도시였던 이 곳의 1인당 소득은 2007년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어얼둬쓰=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초원도시가 국제도시로 중국 건국 61주년 연휴인 3일 네이멍구 자치구 어얼둬쓰시 번화가의 한 대형 상가 앞에서 전자제품 체인업체 직원들이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민생광장’ 간판에 한자와 병기된 문자는 몽골 문자. 30여 년 전만 해도 초원 위의 작은 도시였던 이 곳의 1인당 소득은 2007년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어얼둬쓰=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세계의 공장’으로 불려온 중국의 상품 경쟁력은 갈수록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제품의 국가별 순위에서 중국은 1210개로 2위 독일의 860개보다 월등히 많았다. KOTRA 베이징 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신발과 마이크로오븐의 중국 제품의 점유율은 70%에 이르며 소형 컴퓨터는 60%, 휴대전화는 50%에 이른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의 방직과 의류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39.3%, 일본 시장에선 무려 78.6%에 이른다.

이제 중국 기업들도 인수합병 등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중국의 토종 자동차업체인 항저우지리(杭州吉利)유한공사는 올해 8월 세계적 브랜드인 스웨덴의 볼보자동차를 18억 달러에 매입했다. 포드가 10년 전 볼보를 인수할 당시의 64억9000만 달러에 비해 헐값으로 사들인 것은 자본력과 정부 지원이 합해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에너지 기업 등 기업들의 활발한 해외 진출(쩌우추취·走出去)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지난해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는 40%가량 줄었지만 중국의 해외투자는 565억3000만 달러로 1.1% 되레 늘었다. 이는 세계 5위 규모로 2008년 12위에서 무려 7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 중국 경제력, 2030년 미국 역전 예상


일본 내각부는 8월 올해 2분기 일본의 명목 GDP가 1조2883억 달러로 중국의 1조3369억 달러에 뒤졌다고 발표했다. 올해 성장률이 중국은 10%, 일본은 2%가량으로 전망돼 한 해 기준으로도 중국이 일본을 제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부는 5월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난해 24.9%와 8.3%에서 2030년에는 중국 23.9%, 미국 17.0%로 크게 역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이 아무리 ‘화평외교’를 외쳐도 주변국의 우려가 점차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얼둬쓰·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저임금-수출 의존’ 30년 성장방식 바꾼다 ▼
금융위기 거치며 수출 급감 “언제든 퇴보 가능” 경각심…‘3農’보다 우선 정책으로

최근 들어 중국 지도부는 ‘경제 발전방식 전환’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올해 3월 정부 업무보고에서 “경제 발전방식을 서둘러 전환해 경제구조를 조정하고 최적화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원 총리는 “경제 발전방식의 전환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값싼 노동력과 자원의 대량 소비를 토대로 해 수출과 대규모 투자에 의존해 오던 30년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올해 원 총리는 첫 번째 중점 추진과제로 세계적인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여전히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적당히 느슨한 통화정책’을 꼽았다. 두 번째로 꼽은 추진과제가 경제 발전방식 전환이고 이어 ‘3농 문제(농업 농촌 농민)’를 언급했다. 오랫동안 정책 최우선 순위를 지켜온 ‘3농 문제’보다 경제 발전방식 전환을 우선시한 것이다.

발전방식 전환이 핵심 사항으로 급부상한 것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존 방식의 한계가 명확해졌고 모순이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수출의 급격한 감소는 생산 급락과 대량실직을 불러왔고 소득불균형 심화와 사회모순 격화를 낳았다. 또 외부에 의지해서는 성장이 언제든지 멈추거나 퇴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왔다.

왕이밍(王一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 거시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올해 6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고성장 시기에 축적된 모순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라며 “향후 30년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제2차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목표는 건전한 내수의 육성이다. 더불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향후 5년간 실시하는 제12차 5개년 규획에 발전방식 전환을 최대 추진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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