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미국, 러와 화해… ‘흑해 오리알’ 그루지야

  • 동아일보

배신감에 이란과 손잡아

미국과 러시아 간 신(新)데탕트(긴장완화) 움직임에 흑해 연안의 소국 그루지야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앙숙이었던 양국이 역사적인 핵무기 감축협정에 서명하는 등 ‘핵 없는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서 세계가 이를 반기고 있지만 이로 인해 그루지야는 점점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고 시사주간 뉴스위크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잡지는 그루지야가 미-러 신데탕트의 거의 유일한 피해자라며 특히 친미성향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입지가 난처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루지야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믿고 의지해온 미국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8년 8월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당시 미국은 그루지야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이 수도 트빌리시로 날아가 그루지야 일부 지역을 점령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구소련 지역 내 친미 국가를 지원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도 가입시키려 했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친미국가 지원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논의도 사실상 중단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감축 외에도 이란 핵 대응,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 등으로 협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에서 암약해온 러시아 스파이 조직이 최근 체포된 이후에도 미-러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태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루지야는 미국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설 새로운 지원세력으로 이란, 터키와 손을 잡고 있다고 잡지는 전했다.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국가이고 터키는 새롭게 떠오르는 아랍권 맹주로 모두 미국에는 껄끄러운 나라다.

이란은 이달 중 외교장관을 그루지야에 파견하는 한편 수력발전소 건설과 상호 비자면제 협정 체결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그루지야가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 문제에서 그루지야 입장을 지지하겠다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그루지야 방문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루지야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답변을 미루고 있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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