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친스키 ‘왕들의 성지’ 안장 예정… 찬반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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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세력 “왕의 반열 인정 못해” 시위

오바마-메드베데프 18일 장례식 참석

10일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내외의 장례식이 18일 남부 크라쿠프에 있는 바벨성에서 엄수된다.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의 유해는 바벨 대성당 내 지하묘소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동안 폴란드가 핵심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잃은 국가적 재앙 앞에서 일치단결해 왔으나 카친스키 대통령을 바벨 대성당에 안장하는 문제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벨 대성당 지하묘소는 14세기 이후 폴란드 역대 왕들과 독립운동 지도자 등 폴란드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최고의 성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독립을 지켜낸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와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정부를 이끈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등이 안장돼 있다.

존경받는 소수의 역사적 인물만 모셔지는 바벨 대성당에 카친스키 대통령이 묻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평소 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진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3일 밤에는 크라쿠프 시민 수백 명이 ‘카친스키가 진정 왕의 반열에 오를 가치가 있는가?’ ‘바벨성은 안 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사이트인 ‘페이스북’에 만들어진 반대 모임에도 2만 명 이상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처럼 폴란드 사회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카친스키 대통령의 평소 정치스타일과 관련이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성당에 대통령을 묻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소 반공을 내세운 카친스키 대통령이 공산주의 세력들을 탄압하는 등 분열의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영어강사 실비아 플러시즈 씨는 “바벨 대성당은 폴란드의 심장 같은 존재”라며 “바벨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폴란드 내에서는 안장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이들은 “카친스키 대통령은 카틴 숲 학살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공무를 수행하던 중 숨졌다”며 “안장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안장을 결정한 스타니스와프 지비시 추기경은 “이런 상황에서 분열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해를 당부했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등은 18일 엄수되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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