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泰정국 ‘오늘이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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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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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탁신’ 10만 레드셔츠 “24시간내 의회 해산하라”
아피싯총리 즉각 거부…시위 격화될 가능성
외신 “탁신 국내 복귀…결정할 마지막 기회”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태국 정국이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대 10만여 명은 14일 수도 방콕에 집결해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했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인과 경찰 5만 명을 방콕 전역에 배치했다. 이날 현재 우려했던 폭력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를 주도한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일명 레드셔츠)’이 24시간 내 의회를 해산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더 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해 15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오후 수도 방콕의 중심가인 사남루엉 광장에는 붉은 물결이 출렁거렸다. ‘오늘은 정의(Truth Today)’라는 문구가 적힌 붉은 셔츠를 입은 시위대들은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피싯(아피싯 웨차치와 현 총리)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사남루엉 광장에 몰려와 천막을 치고 집결한 시위대는 얼핏 봐도 수만 명은 돼 보였다. 인근 랏차담넌 거리도 곧 시위대로 뒤덮였다. 대부분 농민과 도시빈민으로 이뤄진 반정부 시위대는 12일 이후 트럭과 버스, 배편을 이용해 속속 방콕에 도착했다. 정부는 이들의 수도 입성을 막지 않았다. 경찰은 시위대 규모를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으며 시간이 지나면 15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각종 확성기 소리와 시위대의 함성 때문에 귀에 대고 말하는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누런 옷을 입은 수천 명의 승려가 천막 아래서 불경을 외는 요란한 소리까지 범벅이 됐다. 빨간 옷을 입은 시위대가 가득 탄 차량과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꼬리를 물었다. 이곳에서 만난 타나밧 수콘타삽 씨(36)는 “현 정부는 국민에게서 민주주의적인 정권을 폭력으로 빼앗은 정당하지 못한 권력”이라며 “계속 시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 북부의 람빵에서 과일행상을 하는 딴야와데 메촉 씨(45)는 “아피싯 정부는 시골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방콕 시민만 신경 쓴다”고 불평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6일 탁신 전 총리의 재산 23억 달러의 약 60%인 14억 달러를 국고에 귀속시키라는 대법원 판결로 촉발됐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번 시위가 부정부패 혐의로 해외 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가 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UDD 지도자 위라 무시까뽕은 이날 정오 지지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정부가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즉각 의회를 해산할 것을 요구한다”며 반정부 시위의 시작을 알렸다. UDD는 정부가 24시간 내에 의회를 해산하지 않을 경우 15일 방콕 전역에서 시위를 벌여 교통을 마비시키겠다고 경고했다.

시위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아피싯 총리는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의회를 해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 정부가 비민주적이고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시위대의 비난에 대해 “나는 전임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았고 내 임기를 마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아피싯 총리는 “시위가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한 뒤 군부에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대가 지도자로 받들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현재 두 딸을 만나기 위해 독일 또는 스위스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머물러 온 탁신 전 총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트위터를 이용해 태국에 있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반정부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한편 이번 시위로 태국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춤폰 신라빠아차 관광체육부 장관은 태국 관광업계에 약 20%의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화된 검문검색으로 방콕 시내는 곳곳에서 교통체증을 보이고 있다. 시위 장소와 가까운 은행과 대학, 병원 등은 문을 닫았다. 35개국 정부는 태국의 반정부 시위를 이유로 자국민에게 여행경보를 내렸다. 공항에는 안전요원들의 순찰이 2배로 늘었고 공항 안에 들어가 승객을 맞이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태국은 2008년 11월과 12월 반정부 시위대의 공항 점거 사태로 막대한 국가이미지 손상과 물질적 피해를 봤던 전례가 있다.

방콕=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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