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1〉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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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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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선 장애아가 입학하면 친구들 돌아가며 ‘1일 도우미’
똑같은 교육… 같은 기회…“장애인들의 표정이 국격”
경제만으론 선진국 못돼… 개인 - 사회 품격을 높여야

지난해 ‘스페셜 올림픽(Special Olympic)’에 참가한 한 장애인(오른쪽)이 던지기 경기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 파인허스트스쿨의 패트릭 유 교사는 “뉴질랜드에서는 전국의 장애 학생들이 참가하는 이 같은 스페셜 올림픽이 매년 열리고 있다”며 “같은 학교의 비장애 학생들은 행사 도우미로 나서는 한편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온 힘을 다해 응원한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국제스페셜올림픽협회
지난해 ‘스페셜 올림픽(Special Olympic)’에 참가한 한 장애인(오른쪽)이 던지기 경기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 파인허스트스쿨의 패트릭 유 교사는 “뉴질랜드에서는 전국의 장애 학생들이 참가하는 이 같은 스페셜 올림픽이 매년 열리고 있다”며 “같은 학교의 비장애 학생들은 행사 도우미로 나서는 한편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온 힘을 다해 응원한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국제스페셜올림픽협회
뉴질랜드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제이슨(가명)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아로 태어났다. 그뿐 아니라 혼자서는 걷기 힘든 보행장애까지 갖고 있다. 하지만 제이슨은 뉴질랜드 일반 학교에서 여느 학생들과 똑같이 생활한다. 제이슨의 교실에는 늘 교사가 2명이다. 제이슨을 맡아줄 교사 1명이 더 들어온다. 이 교사는 제이슨의 학교생활은 물론 귀가까지 책임진다.

교사보다 더 가까이에서 제이슨의 불편을 나눠 지는 건 같은 반 친구들이다. 이들은 매일 돌아가면서 ‘1일 도우미(helper)’가 돼 제이슨을 돕는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어려서부터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제이슨은 뉴질랜드시각장애인협회가 번역해 보내준 점자(點字) 교과서를 읽으며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저수지의 물이 수도꼭지까지 오는 과정을 즐겁게 공부했다.

○ 장애인을 돕는 것도 중요한 교육

제이슨의 일상은 뉴질랜드에서는 ‘특별 케이스’가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자폐증이나 다운증후군과 같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대부분 일반 학교에 진학한다. 내 자녀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장애아의 일반 학교 입학을 반대하고,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지 못하게 반대시위를 하는 한국 사회와는 한참 다른 풍경이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로 생각합니다.”(뉴질랜드 파인허스트스쿨 패트릭 유 교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만난 교민 한재관 씨는 “요즘 뉴질랜드에는 장애아를 둔 한국 부모들의 이민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장애아에 대한 차별과 불편을 견디다 못해 뉴질랜드로 온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공립초등학교 ‘에콜 콩방시옹’의 보조교사 바르바라 씨의 주된 임무는 장애인을 돕는 일이다. 이 학교에는 지금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 교사 1명과 장애인 학생 2명이 다닌다. 장애인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 똑같이 담임을 맡고 있다. 바르바라 씨는 이들이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을 도와준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인 뉴저지 북부 버겐카운티의 노우드 공립 초등학교에는 수년 전부터 10여 명의 정신지체 어린이가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수업에 참여한다. 주 3, 4시간의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지만 정신지체 어린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선진국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나와 똑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문화는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선진국들은 최근 소수자들에게 사회적 중책을 맡기며 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의 멜팅포트(melting pot·인종의 용광로)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이민자의 동화는 쉽지 않았지만 2007년 아랍계와 흑인 출신 각료의 등용이 처음으로 이뤄지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튀니지 출신의 라시다 다티, 알제리 출신의 파델라 아마라, 세네갈 출신의 라마 야드가 각각 법무장관(현 유럽의회 의원), 주택담당 부장관, 인권담당 부장관으로 중용됐다.

순혈주의 전통이 강한 독일에서도 최근 이민자의 정계 진출이 늘고 있다. 2008년 녹색당 당수로 선출된 쳄 외즈데미르는 터키계 최초로 주요 정당의 당수가 됐다. 지난해에는 또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계 장관이 탄생했다. 필리프 뢰슬러 보건장관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9개월 만에 독일로 입양됐다.

전(前) 미국 백악관 직속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는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인 데다 소수인종인 한국인이지만 미국의 고위 관료로 현지 장애인 정책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현재 이 자리를 맡고 있는 조지프 박 차관보도 한국계 장애인이다.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역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지만 독일 각료 가운데 가장 막강한 재무장관과 내무장관을 모두 맡았다.

미국에서 여성 최초의 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80)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나 역시 어퍼머티브 액션(소수자 우대정책)의 산물”이라며 “내가 졸업할 당시 로스쿨의 여성 비율은 1%에도 못 미쳤지만 지금은 52%일 정도로 혁명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송창주 교수는 “선진국이라는 ‘국격’은 ‘삼성’이나 ‘서울’ 같은 세계적 기업이나 도시 한두 개로 높일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개개인의 품격과 사회 각 부문의 역량이 고르게 발전해야 진정한 국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클랜드·웰링턴=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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