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동북아 안보 밑그림 헝클어지나…” 한반도-中 촉각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본토 육군1군단 日이전 중단”
해외 미군 재편작업 제동 걸려
美, 병력증강 통한 中 견제 차질
‘찰떡 동맹’ 복원 쉽지 않을듯

미국과 일본을 갈등구도로 몰아가고 있는 오키나와(沖繩) 현의 후텐마(普天間) 미군비행장 이전 문제는 향후 양국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안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후텐마’는 이제 일본 민주당 정부가 내세운 ‘대등한 미일관계’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게다가 미국이 그리는 동아시아 안보의 밑그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일관계의 범위를 뛰어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위태위태한 미일관계

양국은 내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50주년을 맞아 동맹관계를 안보뿐만 아니라 환경 방재 의료 보건 등으로 전면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후텐마 문제에 걸려 최악의 상황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9월 중순 일본 민주당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양국은 서로 낙관적이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후텐마 기지 이전에 관한 기존의 미일합의를 수정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미국은 이를 선거용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정권을 잡고 난 뒤 야당 시절 접할 수 없었던 정보를 취득하면 생각이 바뀔 것으로 믿었다. 일본 측은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아프가니스탄에 지원을 늘리면 후텐마에서는 양보를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상대방 입장이 예상외로 완강하다는 걸 알고는 양국 모두 당혹했다. 그만큼 양국 정권 간에 속 깊은 파이프라인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미국 내 지일파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존 루스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 정부가 요구한 ‘오키나와 주민의 부담 경감 방안’을 들어주면 하토야마 내각이 기존 미일합의를 이행할 것으로 믿고 미국 정부에 이를 건의했다가 궁지에 몰렸다. 루스 대사가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며 펄펄 뛰는 것은 이런 배신감 때문이다. 대표적 지일파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장관도 공개적으로 대일(對日)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일각에선 하토야마 총리가 야당 시절부터 ‘미군이 상주하지 않는 일본 안보’를 주창해 온 점을 들어 궁극적으로 미군 철수를 겨냥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그의 정치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준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는 1950년대 중반 미국 일변도 외교를 비판하면서 주일미군 분담금 삭감을 주장해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양국에선 그의 ‘뿌리’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 불고 있는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이 합의를 깬다면 양국관계는 거의 파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미군 재편 계획에 큰 차질을 빚는 미국이나 후텐마 기지의 위험성을 계속 떠안아야 하는 일본 모두에 최악이다. 일본 경제계는 양국 갈등이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하토야마 총리 두 정상 간은 물론 정부 당국자 간에 신뢰가 상당히 훼손됐기 때문에 일본이 기존 합의 이행 쪽으로 결정한다 해도 예전 같은 찰떡궁합으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 동북아 안보구도에도 영향

후텐마 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대폭 증강된 병력이 한반도로 향하는 발진기지 역할을 담당한다는 게 미 정부의 구상이다. 그 기능이 어디로 이전되느냐는 동북아 안보와 직결된다. 미일이 2006년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 로드맵’에 △후텐마 이전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8000명의 괌 이전 △미 본토 일부 부대의 일본 이전 △주일 미군기지 내 병력 이동 등이 포함돼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따라서 후텐마 이전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 다른 미군 재편 작업도 도미노처럼 영향을 받는다. 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자마(座間) 기지로 옮겨가려던 미 워싱턴 주의 육군 제1군단이 이전을 중단할 것이라는 소식이 일본 언론에 9일 보도된 것은 이런 도미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후텐마 문제가 지지부진하자 오바마 정부는 미군 재편과 관련한 예산을 의회로부터 받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 주둔 미군의 운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 정부가 후텐마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는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미국이 후텐마 기지 이전과 함께 괌 주둔 미군 병력을 증강하려는 것은 21세기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도 있다. 후텐마의 향배에 한국은 물론 중국과 북한 등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日 실망스럽긴 하지만…” 말 아끼는 美
국무부 “日 진의 확인이 우선”
“로드맵 명확히 해야” 우회압박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관련한 양국 정부의 불협화음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즉각적인 논쟁을 유보한 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8일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문제 논의를 위한 미일 각료급 회의를 중단하기로 했다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상의 발언에 대한 코멘트를 요구받자 “일단 발언의 진의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이어 “이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와 매우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다”며 “커트 캠벨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어제(7일)도 일본 당국자와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생각에는 후텐마 기지의 주일미군 재배치와 관련한 로드맵을 명확히 하는 것이 오키나와의 부담을 줄이고 미일동맹의 역량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존 루스 주일 미국대사는 4일 오카다 외상을 만난 자리에서 “후텐마가 이대로 간다면 미일 합의가 깨진다”며 “내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50주년을 맞는 양국 관계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균열이 미일동맹의 틀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당국자는 “현 상황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새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며 “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가 미일 동맹의 근간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의 정치평론가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과 도쿄(東京) 간에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미일동맹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론가들은 또 “일본은 후텐마 기지가 일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하토야마 정부가 미군의 주둔에 대해 거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기고]‘후텐마 갈등’ 한미 전작권 전환에 영향 줄수도
유사시 미군지원 핵심 기지로
‘한중일 중간’ 전략가치 높아
안보지형 변화 한국도 당사자



미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 출범 직후, 갈등관계를 보이던 미일관계는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수습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새로운 동맹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동맹 심화 회의’를 보이콧했다. 미국은 단단히 화가 났다. 갈등의 핵심은 오키나와 현 후텐마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다.

2006년 양국은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의 감축과 함께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내 슈워브 미군기지로 이전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올 총선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 외 혹은 외국 이전을 공약했으며, ‘오키나와 현민 생각이 우선’이라는 표현으로 미일 합의의 백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 등에게는 미일관계가 중요하다고 하고, 국내에서는 오키나와 현민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엇갈린 발언을 하고 있다. 정권 출범 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일동맹은 외교의 근간’이라고 전했지만, 곧 참의원에서 미일동맹의 포괄적 재검토를 주장했다.

11월 정상회담에서도 2006년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하토야마 총리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지만, 다음 날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할 뜻을 밝혀 미국을 놀라게 했다. 이어 합의안을 고수할 경우 사민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할 뜻을 밝히자, 그는 후텐마 기지의 새 이전지를 물색하라고 관계 각료에게 지시한다. 외교보다 현실정치가 우선한다고 하지만, 58년 미일동맹의 최대 갈등 국면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오키나와 기지를 둘러싼 미일 갈등은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총리는 오키나와 반환에 합의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반환의 근거가 된 것은 ‘한국의 안전은 일본에 긴요하다’라는 공동성명 중의 ‘한국 조항’이다. 한국 조항은 반환 뒤에도 오키나와 기지가 한국의 유사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보장하는 일본의 약속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국은 섬의 전략적 가치를 살려 아시아태평양지역 미군의 중추 전략기지로 개발했다. 이후 오키나와 기지는 한국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6·25전쟁 당시 오키나와는 B29기 발진 기지였으며, 지금도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한국에 전개될 전력은 오키나와 미 해병이다.

만약 후텐마 기지가 하토야마 정부가 바라는 대로 괌 등으로 이전할 경우, 한국의 안전에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 유사시 가장 긴급히 전개될 미 해병 전력의 차질을 의미한다. 괌의 해병은 한반도와의 거리를 고려할 때 오키나와 해병이 갖는 한반도 유사시 즉응전력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중일 3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는 오키나와 기지의 전략적 가치에 비추어, 기지의 축소 내지 변경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재편 과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한미동맹의 방향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검토와 조정이 필요한 환경을 초래할 것이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당사자다. 우리 안전에 차질이 없도록 일본 정부가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따져야 할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