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유럽 MD체제 무기 연기”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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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공식발표… 부시 정책 뒤집어
이란 장거리미사일 능력 갖출땐 재추진 여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폴란드와 체코에 설치를 추진해온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17일 보도했다. 미국은 17일 오전(현지 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를 공식 발표했다.

얀 피셔 체코 총리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밤 자신과의 통화에서 “미국 정부는 체코에 미사일방어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려는 계획에서 손 뗄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고 발표했다. 피셔 총리는 이어 “폴란드 역시 같은 방법으로 미국 정부의 방침을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CNN은 최근 미국대표단이 폴란드와 체코를 잇달아 방문해 최종 방침을 전달했다며 폴란드 국방부 관계자도 MD 중단 결정 사실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 철회는 긍정적인 조치”라면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동안 동유럽 MD 계획을 재검토해온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보다는 중·단거리 미사일이 유럽동맹국들에 당면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잠재적인 위협에 대한 평가와 함께 MD 기지를 운용하는 데 따른 비용 문제도 고려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하지만 이란이 향후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출 경우 MD 계획이 재추진될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뒀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미국과 유럽동맹국의 안보를 위해 동유럽 MD 기지 설치를 결정한 부시 전 행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이란이 핵무기를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해 공격해올 가능성을 우려해서 동유럽 MD 계획을 발표했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폴란드에 요격 미사일 10기가 배치되고 체코에는 MD 레이더기지가 설치된다.

러시아는 국경 가까이에 배치된 미국 미사일은 러시아의 안보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강력 반발해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계획대로 동유럽 MD 계획을 추진할 경우 폴란드와의 국경 부근에 새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WSJ는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결정으로 동유럽 MD 계획 추진에 강력하게 반대해온 러시아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겠지만 폴란드와 체코의 안보 불안감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비판론자들은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에 나선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문제 해결에 러시아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정치적 제스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란이 끝내 핵개발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가해질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에 러시아가 동참해줄 것을 기대하고 취한 조치라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다음 달 1일 이란 핵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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