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생활밀착 하토야마號, 인재-재원 부족 극복해야 성공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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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왼쪽부터)이 31일 일본 도쿄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중의원 선거의 의미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왼쪽부터)이 31일 일본 도쿄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중의원 선거의 의미와 한반도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일본 총선’ 韓-日 전문가 좌담
동아일보-세종연구소-동서대 일본연구센터 공동기획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자민당 독주에 지친 日유권자들
‘이제 바꿔보자’ 정권교체 선택
정구종 동서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소장
연정 파트너 사민당과 조율 중요
對韓정책 지나친 기대 경계해야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자민당 새 경제모델 없어 몰락
日정치 양당체제 확립되기를

《동아일보는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소장 진창수), 동서대 일본연구센터(소장 정구종)와 공동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 중의원 선거의 의미와 새 정권의 한반도 정책 등을 입체 분석했다. 그 공동기획의 하나로 정 소장과 진 소장, 아사히신문의 한반도 전문가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칼럼니스트가 3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좌담을 갖고 총선 결과를 분석했다.》

―민주당에 역사적인 대승을 안긴 일본 국민의 선택을 어떻게 보나.

△와카미야=무엇보다 자민당 정치에 질렸다는 게 가장 크다. 국민이 민주당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정권교체 열망이 강력히 작용했다. 전에는 민주당이 정권을 담당할 능력이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지만, 이젠 민주당에 맡겨도 좋지 않겠느냐는 신뢰감이 국민 마음속에 생긴 것이다. 자민당 지지자의 30%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선택했다. 어쨌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의 결과다.

△정구종=일본 신문은 ‘역사가 움직였다’ ‘지각변동’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54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한 자민당을 단번에 끌어내린 것은 역시 변화에 대한 국민 염원이 결집된 결과다. △진창수=자민당에 대한 불만과 민주당에 대한 불안이 모두 있었지만, 국민은 불만이 워낙 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소 불안한 쪽을 선택했다고 본다.

―2005년 총선에서 압승했던 자민당이 4년 지난 이번엔 참패했다. 자민당과 국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와카미야=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다이내믹하게 정권교체가 일어났지만 일본은 자민당이 주도했다. 냉전기에는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에 대한 관료의 역할이 1955년 자민당 체제를 지탱해온 요인이었지만, 냉전이 끝나고 버블 붕괴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그런 요인이 무너졌다. 1990년대 들어 54년 자민당 체제의 종식이 거론됐지만 자민당을 대신할 정당이 없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등장으로 자민당이 극적으로 연명하게 됐지만, 역으로 고이즈미 개혁 이후 자민당의 보수 기반이 무너지고 체력이 약화됐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권의 탄생, 변화라는 모토가 민주당 승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민주당 역시 자민당에서 생각이 달라 나온 사람들이 주축이 된 보수당이다. 따라서 국민이 과거 사회당과 같은 진보세력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민주당은 대기업과 관료 중심 정치를 서민을 위한 정치로 바꾸겠다고 해왔다. 국민은 아동수당처럼 몸에 와 닿는 생활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진=54년 체제가 몰락한 것은 냉전에 대한 대응력 부재, 새로운 경제모델의 부재가 원인이다. 또 고이즈미 전 총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내세우면서 자민당 기반을 무너뜨렸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무책임한 정권이 됐다. 결과적으로 고이즈미가 자민당을 부수고 아소가 민주당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와카미야=결과적인 얘기지만, 지난해 가을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 아소 총리가 국회를 조기 해산하고 빠르게 대응했더라면 민주당과 좋은 승부를 펼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일본 정치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정=민주당은 국회의원 100명을 투입해 각 부처를 장악하겠다고 했다. 이는 관료 중심의 국가운영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정치에 의한 행정 지배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와카미야=민주당은 관료지배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정치인들이 얼마나 경험과 능력이 있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리더가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이즈미 이후의 자민당과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 등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민주당 쪽이 인재가 더 다양하다. 내년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장기 정권으로 이어질지가 결정될 것이다.

△진=그동안은 관료 주도로 결정된 사안을 정치가 시행했다면 이제는 국가전략국이 주도해 공약을 시행하는 형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인재 부족과 재원조달 문제를 안고 있다. 집권 2년차부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해 다시 정치변동이 오거나 자민당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민주당 내에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합의 도출이 가능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과 자민당의 정책과 이념을 비교한다면….

△와카미야=자민당이 국가주의적이라면 민주당은 국민과 비영리기구(NGO), 지방자치단체 중심이다. 민주당은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틀을 넘은 동아시아공동체 창설 등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자민당은 선거 때 ‘일본을 지키는 것은 자민당’이라고 주장했지만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정=자민당은 국가를 지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했지만 국민은 그것보다는 변화를 원했다. 그게 이번 선거결과로 드러났다.

△진=민주당은 시민의 시선에서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이 자민당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경제정책은 그다지 차이가 없다. 외교정책도 차이는 있긴 하지만 확실치 않다. 국민은 민주당의 정책을 보고 선택했다기보다 정권을 교체하고 싶다는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민주당은 아시아 중시 외교노선을 밝히고 있다. 민주당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오늘 아침 중국 정부가 민주당 승리를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미일동맹을 견제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민주당의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관계’ 공약은 미국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한미일 안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불안을 가질 수 있다. 가령 자위대의 해외파견 기준도 민주당은 유엔의 결정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보지만 사회당은 이에 반대한다. 연정을 맺을 민주당과 사민당이 이런 문제 등에서 의견 조절이 가능한지를 지켜봐야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가시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진=민주당 정권은 역사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역사 인식도 자민당과는 다른 것 같다. 그러나 하토야마 대표가 아시아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미일관계와 관련해선,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자립적인 정책을 주장했지만 결국 실현 불가능했다. 일본 민주당도 정권을 맡으면 더 현실적인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본다.

△와카미야=고이즈미 정권은 미일관계가 긴밀하면 아시아 외교도 잘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지만 하토야마 대표는 아시아 외교가 잘 되면 미일 간에도 대등한 외교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사동맹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에 하토야마 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시아 중시를 이어가는 게 좋다고 본다.

―민주당 정권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와카미야=하토야마 대표가 기본적으로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틀림없다. 한일포럼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오카다 간사장이나 마에하라 전 대표 등은 한국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서도 잘 안다. 다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당 정권이 내정의 기반을 다지지 않으면 다시 민족주의가 대두될 수 있다.

△정=민주당 정권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단기간에 일본의 일반적 국민정서와 자민당의 대한(對韓) 정책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진=한국이 기대하는 정책은 좀처럼 실현이 쉽지 않다. 한국이 강하게 요구하면 오히려 역풍의 가능성도 있다. 한국도 이를 이해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내년은 한일 강제합병 100년이 되는데….

△와카미야=하토야마 대표 등은 기본적으로 건전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는 담화가 나오지 않겠느냐.

△정=차기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이를 기대할 것이다. 그 후 양국 정상 공동선언으로 이어져 건전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진=내년엔 이런저런 이벤트보다는 양국 정부가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잘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와카미야=자민당보다는 대화를 중시하겠지만, 대북정책이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진=북한이 일본의 새 정권에 대해 타협책을 쓸지도 모른다. 민주당 정권으로선 대북정책이 내년 참의원 선거에 득이 된다면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

―민주당 정권에 대해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진=일본 정치가 앞으로 양당체제를 갖춰나가길 바란다. 그건 외부에서 보기에 일본의 정치와 정책방향을 알기 쉽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정권교체는 한일관계의 발전에도 좋은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한반도 관련 등 여러 공약에 대해 시행 가능한 리더십을 하루빨리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와카미야=앞으로 10∼20년 동안 일본에선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자민당이 건전한 야당이 되기를 기대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한 정당이 압승할 수 있는) 소선거구제의 효과가 확실히 나타났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는 또 극단적 변화가 올지도 모르지만, 양당 체제가 돼 건전한 정치가 펼쳐지길 바란다.

△정=정권교체에 대해 하토야마 대표는 물론 미디어도 역사적인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이 어떠한 나라가 될지, 새로운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주시해야 한다. 민주당 정권은 국내정책과 외교안보 면에서 이제까지의 자민당 정책을 척결하고 새로운 정책으로의 전환을 주창하고 있다. 1년 뒤에는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정리=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참석자 프로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

△1948년 도쿄 출생

△1970년 도쿄대 법학부 졸업, 아사히신문 입사

△1996년 아사히신문 정치부장

△2001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

△2002년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1944년 충북 영동 출생

△1967년 연세대 국문학과 졸업

△1991년 동아일보 도쿄지사장

△1997년 동아일보 편집국장

△2001년 동아닷컴 사장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

△1961년 경남 김해 출생

△1986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4년 일본 도쿄대 정치학 박사

△2002년 일본 교토대 초빙교수

△2007년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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