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콜롬비아에 마약 차단용 대규모 군사기지 추진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南美국가 좌우대립 다시 점화

좌파블록 “침략 위한 준비다” 거세게 비난
콜롬비아 “내정 간섭”… 주변국 설득 안간힘

“침략을 위한 준비다.”(남미 좌파블록)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콜롬비아)

미국이 친미 성향의 콜롬비아에 대규모 미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남미 각국에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남미 좌파블록은 미국과 콜롬비아를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한동안 잠잠했던 남미 국가들의 좌우 이념 대립이 미국의 군사기지 건설 추진을 계기로 다시 불붙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미국은 마약 거래를 차단할 군사기지를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에 새로 마련하기 위해 최근 수주일 동안 콜롬비아 정부와 은밀하게 협상해왔다. 콜롬비아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 50억 달러 이상의 군사원조 및 마약차단 지원금을 받아온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꼽힌다. 그동안 남미의 거점기지로 활용해온 에콰도르의 만타 공군기지가 지난달로 10년간의 사용기간이 끝남에 따라 마약거래를 감시할 정찰기를 띄울 수 없게 되자 미국은 콜롬비아로 눈을 돌렸다. 좌파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기지 재임대를 할 수 없다고 결정하자 남미 좌파블록은 한목소리로 ‘남미 주권의 승리’, ‘미국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이라며 반겼다.

로이터통신은 “양국 간 군사기지 임대 협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며 “워싱턴에서 최종 협의를 가진 뒤 이달 중 기지 임대 계약이 정식 체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협상이 타결되면 현재 300명 수준인 콜롬비아 주둔 미군 병력이 최대 800명으로 늘어나고 미군을 지원하는 군수회사 직원도 600명가량이 콜롬비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미 주둔군은 마약거래를 감시하고 반란을 막는 활동을 지원할 수 있지만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금지된다.

미국과 콜롬비아 간 비밀협상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남미 국가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좌파블록 국가뿐만 아니라 칠레와 브라질도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하면서 콜롬비아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비난의 선봉에 선 인물은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이웃나라를 침공하기 위한 군사적 기반을 콜롬비아에 마련하려 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침략적인 나라”라며 “콜롬비아 내 미군기지 건설은 남미 대륙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좌파블록에 속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도 “미국의 의도는 마약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를 막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콜롬비아는 “우리는 베네수엘라가 러시아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할 때 비판하지 않았다”며 주변국의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흐름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콜롬비아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설득에 나서는 등 여론 돌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BBC방송은 우리베 대통령의 주변국 순방 이후 브라질 페루 칠레 파라과이 등이 “미군기지 허용은 콜롬비아가 결정할 일”이라는 방침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전했다. 콜롬비아 안보전문가인 아만도 보레로 씨는 “콜롬비아 정부가 앞으로 더욱 미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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