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비는 ‘우연한 영웅’

  • 입력 2009년 6월 25일 02시 56분


유혈진압 경찰 ‘형제’로 표현
모호한 처신에 지지자들 떠나

이란 대선 결과에 항의하는 시위의 촉발이 된 중심인물인 개혁파 후보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사진)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대선결과 발표 이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무효와 재선거 실시를 촉구해 시위를 촉발시켰으나 이란 당국이 강경 진압에 나선 이후 지지층에게 ‘평화적인 대응’을 주문하면서 그의 구심점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23일 무사비 전 총리 지지자들이 “탄압에 직면한 상황에서 무사비가 ‘거리 선동가’로 변신하기를 주저했다”며 “이런 (불분명한) 처신이 그의 저항 이미지를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대 10여 명이 한꺼번에 숨진 20일 무사비 전 총리는 “나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돼 있으며 내가 체포되더라도 전국 규모의 총파업을 계속 벌여 달라”고 지속적인 저항을 독려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폭력을 휘두른 친정부 민병대, 혁명수비대, 경찰을 가리켜 ‘우리의 형제’ ‘우리의 혁명과 체제의 수호자’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했다.

AP는 지지층을 당황하게 만든 이 같은 무사비 전 총리의 행보로 지지층 내에서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법 테두리 내에서의 저항’을 강조하는 무사비의 노선에 일부 지지층이 반기를 들면서 개혁파 내부의 분열을 가져왔고 결국 저항의 기세를 위축시켰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대들의 무사비 전 총리 지지를 상징하는 녹색 리본이나 머리띠를 한 모습도 현장에서 점차 줄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들이 외치는 구호도 ‘무사비를 대통령으로’ ‘대선 무효’에서 대선결과를 인정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라술 나피시 미국 스트레이어대 교수는 “무사비는 ‘우연한 영웅’에 불과했다”며 “그는 개혁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위 참가자는 “시위에 나선 많은 사람이 무사비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일부는 숨지기도 했다”며 “‘무사비가 우리의 지도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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