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후 초당적 협력 - 대안 제시 못하고 무기력
체니 잇단 강경 발언에 온건파 “우익정당 될라” 반발
러시 림보 씨(강경 우파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딕 체니 전 부통령 같은 강경 보수파 인사들의 목소리만 커져가고 있다. “이러다간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전국 정당이 아닌 강경 우파들만의 정당으로 협소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온건파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의 활로를 놓고 노선투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돌아온 ‘다스베이더’”=체니 전 부통령은 중앙정보국(CIA) 가혹신문 메모 공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등 이념적 이슈들에 대해 갈수록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를 두고 영화 스타워즈에서 ‘악(惡)의 세력’을 상징하는 ‘다스베이더’의 복귀라는 비유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라디오에선 림보 씨가 독설에 가까운 거침없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공격적 성향의 구(舊)세대 우파’가 전면에 나서는 양상인 것이다. 이들은 이념과 이론으로 무장한 중견·소장파 엘리트 이념주의자들이 주도했던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공화당 지도부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체니는 공화당의 중요 인물”이라며 “(체니의 오바마 공격이) 공화당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흑인 최초로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이 돼 주목을 받았던 마이클 스틸 의장은 림보 씨에게 비판을 가했다가 호된 역공을 받고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리더십에 큰 상처를 받았다.
▽온건파의 반발=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24일 미 CBS 방송 대담프로에 출연해 “나는 여전히 공화당원”이라고 강조했다. 림보 씨가 자신을 “변절자”라고 낙인찍고, 체니 전 부통령도 “파월은 이미 공화당을 떠난 것 아니냐”고 말한 데 대한 반격이다. 파월 전 장관은 “만일 공화당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한다면 작은 지지집단에 안주하는 정당이 되고 말 것”이라며 “공화당이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국토안보장관을 지낸 토머스 리지 씨도 CNN에 출연해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정책으로 미국이 덜 안전해졌다는 체니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리지 전 장관은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유일한 카드였으나 지난주 “당이 너무 쇳소리를 내고 있다”며 출마를 거부했다. 1990년대 중반 공화당 다수당 시대를 연 주역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만약 협소한 시각을 고집하면 소수당을 벗어날 수 없다”며 “온건파를 잡지 못하면 결코 다수당이 될 수 없다. 내부 긴장 없이는 전국 정당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온건파를 대표하고 나선 파월 전 장관은 대선 때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한 원죄(原罪) 때문에 당내 입지가 약하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이 당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며 이달 초 ‘새 미국을 위한 전국 위원회(NCNA)’를 결성했으나 당내 강경 보수주의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원처럼 행동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떨어져 가는 지지기반=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의 업무수행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28%에 불과하다. 1994년 이래 가장 낮다. 특히 당원들 사이에서 최근 한 달 만에 12%포인트나 지지도가 하락했다.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와의 격차도 1994년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47%의 지지를 받았다.
당을 이끌어갈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73%의 응답자가 누가 공화당을 이끄는 인물인지 모르거나 없다고 대답했다. 민주당이 소수당이던 시절인 2006년 4월 당시 46%의 응답자가 민주당의 리더로 누군가의 이름을 댈 수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 △알렌 스펙터 상원의원의 민주당행 △공화당원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25%로 떨어진 점 △공화당이 견고한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주가 5개에 불과한 점 등을 지적하며 “공화당이 ‘멸종위기’에 처한 듯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이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이념적 포지션부터 현대적으로 재정립하고 불법이민 환경 에너지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새 이슈들에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