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관타나모 폐쇄 진퇴양난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8000만 달러 예산 요청 민주까지 가세 부결
새로운 호재 찾은 공화선 보수 세결집 나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결정하는 건 쉬웠을 것이다. 박수 받기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오바마는 (지금) 안보 이슈의 까다로움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미 의회 외교위 관계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 수용소 폐쇄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수감자 240명의 처리방안을 놓고 묘책을 내놓지 못하자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의원들까지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하면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 상원의 예산안 거부

미 상원은 20일 행정부가 2010년 1월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는 데 필요하다며 요청한 8000만 달러 승인을 거부했다. “수감자들을 어떻게 할지 아무 계획도 제시하지 않은 채 돈만 달라고 한다”는 공화당 비판에 민주당 지도부까지 가세해 90 대 6의 압도적 찬성으로 예산 삭감이 결정됐다.

○ 고무된 공화당

“우리에겐 네 번째 G가 있다.” AP통신이 전한 최근 공화당 내 유행어다. 공화당은 그동안 전통적인 정치 이슈로 삼았던 동성애(gay), 총기규제(guns), 종교(God)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상태에서 ‘관타나모(Guantanamo)’라는 새로운 호재를 찾아내 보수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정면 돌파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오전 국가안보를 주제로 한 특별연설에서 “미국적 가치와 법치주의의 존중은 국가안보와 배타적인 게 아니다”며 폐쇄할 뜻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부시 시대 테러 용의자 처리 방식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중앙정보국(CIA) 가혹신문 메모 공개, 이라크 교도소 내 가혹신문 사진 공개 거부 등 자신이 내린 결정들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그는 앞으로 조지 W 부시 시대 유물 청산은 과감히 밀고 나가는 동시에 국민의 불안감을 줄이는 강경책을 함께 겸비하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20일 인권단체 지도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예방적 구금(preventive detention)’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위협이 되지만 재판에 회부하기 힘든 테러 용의자를 감금하기 위한 법률적 토대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 묘책은 없을까

미 법무부는 관타나모의 240명 수감자 가운데 30명을 조만간 석방할 예정이다. 80명은 재판에 회부하고 나머지는 출신 국가 또는 이들의 테러 혐의 관련 국가에 보낸다는 게 오바마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1명씩만 받아들이기로 하는 등 대부분의 국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 본토로 데려오는 데 대해선 민주, 공화 모두 반대하고 있다. “내 집 앞에 테러 용의자가 걸어 다니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는 감정적 수사가 호응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20일 하원 법사위에서 “수감자들이 본토로 이감될 경우 심각한 테러 확산 위협이 예상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가 21일 보도한 국방부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난 534명 가운데 14%인 74명이 테러나 무장투쟁활동 등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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