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2008년 중국의 한 누리꾼은 중국 내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에 “6·4 사건이 뭔가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현재 이 질문에는 “감히 답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6·4 사건이란 1989년 6월 4일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중국 정부는 6·4 동란 또는 풍파로 지칭)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티베트 독립’과 함께 대표적인 ‘금기어’다. 중국 인터넷에서 이를 언급한 내용은 대부분 삭제된다.
1989년 5월 중순부터 많게는 100만 명이 톈안먼 광장에서 밤을 새우며 “민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이 시위는 6월 3일 밤부터 탱크를 동원한 군 병력에 유혈 진압됐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위 주역들은 수감되거나 망명했다. 그 뒤 이 사태는 사망자 수를 포함해 현재까지 철저히 진상이 은폐됐다.
중국 정부가 톈안먼 사태에 민감한 이유는 중국 현대사에 대한 재평가와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개혁개방 선언과 함께 공산당 일당 독재 아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시작한다. 이런 실험은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인플레이션과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 불만을 낳았고 이는 1989년 톈안먼 사태로 분출됐다. 톈안먼 사태를 통해 ‘민주화가 먼저냐’ ‘경제성장이 먼저냐’라는 주장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사태는 후자의 승리로 일단락됐고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현재까지 사람들과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톈안먼 사태를 긍정하면 지난 수십 년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꼴이 된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