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30년만에 법의 심판대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18일 02시 58분



학살 악명 캄보디아 교도소장
국제법정에 첫 피의자로 출두

1970년대 후반(1975∼79년) 캄보디아 공산 크메르루주 정권이 170만 명의 국민을 학살한 ‘킬링필드’ 사건이 크메르루주 몰락 30년 만에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크메르루주 정권하에서 고문과 학살로 악명이 높았던 카잉 구엑 에아브 교도소장(66)이 17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인근에서 열린 캄보디아 집단학살 국제법정에 첫 피의자로 출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에 대한 정식 재판은 다음 달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는 투올슬렝(정식 명칭 S-21) 교도소 소장을 맡아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1만6000명을 고문하고 처형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소장으로 있던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살아 나간 사람은 단 14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오랜 수감생활 탓인지 이날 법정에서 창백한 낯빛에 시종일관 무표정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는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몰락 이후 20년간 2개의 가명을 사용해가며 숨어 살다 1999년 캄보디아 북부에서 체포됐다.
그는 이날 심문에서 자신의 혐의를 공개적으로 자백하지는 않았으나 기소 전 조사 과정에서 “교도소 안에서 많은 범죄행위가 발생했었다”고 인정했다. 또 그는 “명령을 받고 학살에 참여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 나도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피생활 중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피해자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지만 중형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에 이어 국제법정에 설 예정인 피의자들은 크메르루주 정권의 2인자이자 이념가인 누온 체아(82),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키우 삼판(76), 외교장관을 지낸 이엥 사리(82), 그의 처로 사회부 장관이었던 이엥 티리트(75) 등 4명이다. 이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크메르루주 지도자인 폴 포트는 1998년에 사망했다.
역사적인 이번 국제법정에는 유엔과 캄보디아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측이 킬링필드 사건의 피의자 확대를 강력 반대하고 나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피의자 범위를 확대할 경우 현 집권세력까지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크메르루주의 장교를 지낸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 측 판검사를 움직여 단죄 대상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크메르루주:
*1975∼1979년 통치 좌파정권
*지도자 폴 포트-1998년 사망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목 아래 종교와 상업행위를 금지. 지식인 박해
*4년간 170만 명이 학살 또는 아사한 것으로 알려짐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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