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변희재]미국의 오바마세대와 한국의 실크세대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승리에 O세대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보도했다. O세대는 196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로서 1961년생인 오바마까지 포함된다. 세대명 ‘O’는 ‘Obama’의 ‘O’에서 따왔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오바마도 386세대가 만들었다”며 자신들의 정권인 양 환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세대론의 역사로 볼 때 이는 거짓이요 견강부회(억지로 끌어 붙이기)다.

미국에서 한국 386세대와 유사한 성향을 보인 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베이비붐세대다. 이들은 20대에 들어 68혁명에 참여하면서 상대적으로 진보성향을 띠게 되었다. 미국에서 이러한 베이비붐세대의 뒤를 이은 것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X세대였다.

X세대라는 이름은 캐나다의 소설가 더글러스 커플랜드의 소설 ‘Generation-X’에서 따온 것으로 저항과 혁명의 베이비붐세대와는 달리 대중문화와 인스턴트를 즐기며, 윗세대가 볼 때 도저히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X세대의 범주는 1961년생부터 1981년생까지였다.

이러한 미국의 X세대는 90년대 초반 한국으로 유입되었고 일본의 신인류와 합쳐져 한국에서는 신세대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세대론은 386세대가 아랫세대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악용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그 본질적 한계가 있었다. 당시의 신세대론은 문화투쟁의 도구와 상품구매의 소비자로서만 젊은 세대를 규정했던 것이다.

美이끌고 갈 새로운 힘 ‘O세대’

나이로 볼 때 현재 미국의 O세대는 결국 X세대가 성장한 결과다. 특히 대선 직전까지 미국에서는 Y세대와 포스트 에브리싱(post everything)세대론이 주를 이루었는데 냉전의 벽을 넘어 수평적 국제 네트워크를 확립해 정보통신(IT) 창업을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이들 세대론은 현재 O세대론과 똑같다.

미국의 O세대들이 오바마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도 추락하는 미국의 위상 때문이었다. 필자는 2006년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당시 미국 기자들이 아시아 기자들로부터 조지 W 부시 정권의 일방적 외교노선 문제로 혹독한 비판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미국 젊은 세대는 미국의 권위가 더는 통하지 않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근소한 차로 패했지만 2004년 민주당 존 케리 진영의 선거구호가 바로 ‘세계에서 존경받자(Respected in the world)’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선의 승부는 일찌감치 예견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18세부터 29세까지의 미국 젊은 유권자 중 무려 66%가 오바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미국 O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연구원 존 발프, 페이스북 창업자인 24세의 마크 주커버그, 오바마의 인터넷 선거운동을 담당한 역시 24세의 크리스 휴스 등이다. 특히 휴스는 현재 오바마 정권의 인터넷팀을 이끌며 미국의 IT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20대가 10억 달러짜리 기업을 만들고, 정권을 바꾸며, 국가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숨겨진 진짜 힘이다.

미국에 O세대가 있다면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와 인터넷을 무기로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어나갈 잠재력을 갖춘 1970년생 이하 실크세대가 있다. 실크로드CEO포럼 소속 청년 기업가들이 인터넷에 지속적으로 칼럼을 게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국의 실크세대는 미국의 O세대와 비견되지만 할 일은 훨씬 많다.

미국은 청년창업의 천국이며 세계 최고의 IT 강국이다. 대중문화 시장 역시 1970년대에 일찌감치 선진화시켰다. 반면 한국은 벤처 거품 이후 창업시장이 위축되었고, 인터넷은 폭식자 포털에 점령당했고, 대중문화 시장은 기초적인 질서조차 없다. 미국의 O세대는 잘 닦인 도로에서 마음껏 달리면 되는 반면 한국의 실크세대는 불도저를 앞세워 길부터 닦아야 할 판이다.

낡은 386, 아랫세대 앞길 막아

그러나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조건, 할리우드식 패권주의가 아닌 다원화된 한류, 인터넷 응용 기술력 등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잠재력이 훨씬 크다. 문제는 이러한 잠재력을 키워나갈 사회적 힘이다. 여전히 정치투쟁에 골몰하는 낡은 386들은 실크세대의 성장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러나 역사는 속일 수 없는 법이다. 결국 한국의 실크세대가 미국의 O세대를 이끌며 전 세계를 누빌 날이 조만간 오게 될 것이다.

변희재 객원논설위원·실크로드CEO포럼 회장

pyei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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