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모스코비치]“90년전 레닌 별장은 초호화판”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레닌이 ‘크렘린의 소박한 아파트’라고 불렀던 레닌 별장은 ‘소박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에릭손 고급 전화기(위)와 당시 레닌이 타고 다녔던 롤스로이스 자동차도 보인다. 고리키=정위용 특파원
레닌이 ‘크렘린의 소박한 아파트’라고 불렀던 레닌 별장은 ‘소박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에릭손 고급 전화기(위)와 당시 레닌이 타고 다녔던 롤스로이스 자동차도 보인다. 고리키=정위용 특파원
사망 85주년 맞아 무료 공개

프랑스제 소파 - 독일제 피아노 - 롤스로이스 승용차…

공산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지 85년이 지난 21일. 모스크바 외곽 순환도로에서 남쪽으로 10km 떨어진 고리키 마을의 레닌 별장은 온통 흰눈으로 뒤덮였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이 숨을 거둔 이 별장 주변 지역은 지금도 자작나무와 소나무, 시베리아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천혜의 요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별장은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 모로조바라는 귀족 부인 소유였으나 레닌은 1918년 이를 몰수해 자신의 별장으로 만들었다.

레닌은 이 별장을 ‘크렘린의 소박한 아파트’라고 불렀다. 그의 부인 나데즈다 크룹스카야는 ‘우리의 다차(별장)’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사망 85주년을 맞아 무료 공개된 별장에는 레닌의 산책로와 유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안내인 마가레타 씨는 “크렘린은 ‘레닌 동지가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지만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자체 발전기와 사우나, 전화기, 전등을 갖춘 최고급 별장이었다”고 말했다.

1층 현관 입구에는 에릭손 전화기가 벽에 걸려 있었다. 레닌은 1922년 뇌중풍(뇌졸중)이 재발해 오른 쪽 상반신 마비가 오면서 귀가 어두워지고 언어 장애가 생기자 이 전화기에 소리를 크게 전달할 수 있는 증폭기를 달았다.

현관을 지나자 들판의 흰 눈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넓은 응접실이 나왔다. 1923년 4월 이후 레닌은 이곳에 영사기를 갖다 놓고 영화를 감상했다.

응접실 구석에는 청동 팔걸이가 달린 프랑스제 소파, 독일제 피아노, 벨기에제 사냥총이 놓여 있었다. 러시아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생활의 극치네”라는 말이 벌써 나왔다. 2층 양지바른 곳에 있는 침실은 레닌이 네 번째 뇌중풍 발작을 일으키고 숨을 거둔 곳. 햇빛이 늘 비칠 수 있도록 벽 세 곳에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별장에서 20m 떨어진 차고에는 롤스로이스 승용차가 보였다. 공산당은 레닌의 오른손이 마비되자 외국에서 사들인 자동차를 왼손으로도 몰 수 있게 개조했다.

이날 방문객들의 일부는 레닌 시신이 옮겨졌던 자작나무 대로에서 전동 눈썰매와 스키를 즐겼다.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레닌은 잊혀가는 혁명 지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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