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러시아’

  • 입력 2008년 12월 16일 02시 59분


금융위기 영향으로 술소비 격감→세수타격

의회, 보드카광고 규제 풀어 음주 촉진키로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도입한 절주(節酒) 캠페인을 중단하고 음주를 조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러시아 의회는 12일 술 광고 규제를 푸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일간 베도모스티 등이 전했다. 지금까지 보드카는 사망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러시아 TV광고에 나올 수 없었다. 사람이 맥주 광고에 등장하는 장면도 금지됐다.

의회는 이 같은 규제를 풀어 주류업체를 보호하는 한편 언론사에도 광고 수익을 올릴 기회를 주겠다는 계산이다. 러시아 일간지들은 “의회의 법안은 음주를 조장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주류 광고 규제가 풀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금융위기라고 로이터통신이 분석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금융위기 확산에 따라 대다수 소비자는 보드카와 맥주 소비를 가계 지출에서 제일 먼저 줄일 항목으로 꼽았다.

“소비자들의 절주 성향은 사회주의 시절 이래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 언론도 있다.

옛 소련 공산당은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음주와의 전쟁’ ‘반(反)알코올 명령’ 등을 발동해 보드카 판매를 줄이려 했다. 하지만 암 시장에선 공산당 몰래 만든 밀주가 나돌아 국민 1인당 연간 보드카 소비량은 1960년대 3.9L에서 1980년대 9L로 늘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도 1992년 밀주를 막기 위해 보드카 독점생산과 판매를 없앴지만 1인당 소비량은 오히려 늘었다.

러시아 정부는 “보드카 소비가 1% 증가할 때마다 사망률이 0.25%포인트씩 올라간다”며 절주 캠페인을 벌였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올해 경제위기는 소련 공산당과 러시아 정부가 금주나 절주 캠페인으로 해낼 수 없는 기록을 만들었다. 러시아 주류협회는 최근 “경제 불황으로 보드카 재고량이 지난해에 비해 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주류 판매가 줄어 주류 세금도 지난해에 비해 30% 적게 걷힐 것으로 전망됐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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