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폭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친정부 시위대)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반정부 시위대) 태국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힘(PPP)’ 등 연립정부 소속 3개 정당을 해산하고 솜차이 웡사왓 총리 등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린 2일 태국 시민들의 반응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192일만에 반정부 시위 중단… 군부 쿠데타 가능성도 줄어 집권 PPP “새 정당 만들어 총리 선출”… 정국 수습 불투명
헌재 결정으로 태국 사회를 마비시킨 반정부 시위가 한풀 꺾일 가능성이 있지만 양분된 국론을 통일하고 정국의 안정을 찾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갈라진 시민들=이날 정오가 조금 지난 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자 지난달 25일부터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과 돈므앙 공항을 점거하고 있던 국민민주주의연대(PAD) 소속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의 상징색인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는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헌재의 결정을 환영했다. 시위대는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동료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빨린 잠빠뽕(41·여) 씨는 펄쩍 펄쩍 뛰면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똔끌라 막숙(49·여) 씨도 “태국이 법치국가라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오후 7시쯤 수완나품 공항에 모인 PAD 지도부는 승리를 선언했다. 손디 림통꾼 PAD 공동대표는 “192일 동안 이어진 시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도부 인사들도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대리인’인 솜차이 총리가 퇴진했기 때문에 시위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날 방콕 외곽에 있는 행정법원 건물 앞에서 친정부 세력을 상징하는 붉은색 상의를 입은 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던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 소속 1000여 명의 시위대는 크게 반발했다.
헌재는 친-반정부 시위대의 충돌을 우려해 재판 장소를 예고 없이 행정법원으로 변경했다. 건물 밖에는 방탄복을 입은 경찰관들과 검은색 복면을 쓴 경찰특공대가 배치됐다.
노제렉 실라블라(42·여) 씨는 “치앙마이에서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달려왔다. 열흘 넘게 이곳에서 싸움을 벌여왔는데 너무 슬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시청 앞 광장으로 이동해 친정부 시위대와 합류했다. 수천 명이 모인 광장은 나팔 소리와 확성기 소리로 떠들썩했다. 탁신 전 총리의 초상화가 인쇄된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자신을 브리트(55)라고 소개한 한 남성은 “이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제는 친정부 세력의 힘을 보여줄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국 안정 이뤄질까=PAD가 3일부터 모든 시위를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정국 안정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현재로서는 군부의 쿠데타 발발 가능성도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엘리트 및 중산층으로 구성된 반정부 세력과 도시 빈민 및 농민이 주축이 된 친정부 세력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 태국 정국이 빨리 안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일 새벽에도 반정부 시위대가 점거 중인 태국 방콕의 돈므앙 공항에서 폭발물이 터져 시위대 1명이 숨지고 22명이 다치기도 했다. 헌재 결정에 불만을 품은 친정부 세력이 반정부 시위대에 보복 공격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또 PPP는 새 정당을 만들어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태국 일간지 네이션은 “이번 결정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된 의원을 제외해도 현 연정 소속 의원은 283명으로 전체 447석의 반수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현 PPP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새 총리까지 배출한다면 PAD는 크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림통꾼 PAD 공동대표는 “만약 탁신 정권의 인물이 또 총리로 선출된다면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생일인 5일 이후 친-반정부 세력이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태국 정치 평론가인 크리스 베이커 씨는 “시위대가 용납하지 않는 인물이 새 총리로 선출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며 “그때는 군이 움직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