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종대]假大空비난받는 中농민정책

  •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요즘 중국 정부 관리들은 중앙, 지방 할 것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주창한 ‘과학발전관’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적게는 2, 3일 배우면 그만이지만 많게는 공산당 중앙당교에 입교해 3개월간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처럼 장시간 과학발전관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평소 알고 지내는 중앙정부의 중간 간부는 “들어가면 뭘 배우나요”라는 질문에 다짜고짜 “쿵화(空話)”라고 말했다. 쿵화는 ‘빈말’이나 ‘공염불’을 뜻한다.

관영 중국중앙(CC)TV가 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7기 3중전회) 소식을 전하던 12일 저녁 함께 식사를 하던 중국인 친구에게 “잠깐, 뉴스 좀 보고 얘기하자”고 하자 “페이화(廢話·쓸데없는 소리)”라며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허리를 잘랐다. 자기가 다 아는 내용이니 설명해 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뉴스는 농민 소득을 2020년까지 올해의 2배로 늘리겠다는 선언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사실 외국인에게도 ‘중국 뉴스 따라잡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권력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동정 기사가 없는 한 전국에 동시 방영되는 CCTV의 신원롄보(新聞聯播) 뉴스는 한국의 5공 시절 ‘땡전 뉴스’처럼 항상 서열 1위인 후진타오 주석, 서열 3위인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순으로 나온다.

또 언제 어디서 어떤 성격의 대회나 모임이든 항상 비슷한 내용의 문구, 즉 타오화(套話)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덩샤오핑(鄧小平)이론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3개 대표론의 중요 사상을 지도사상으로 삼고 과학발전관을 깊고 착실하게 관철하자”는 말이다.

이러다 보니 CCTV가 전한 소식은 많지만 실제 국민이 필요로 하는 알맹이는 매우 적다. 알맹이로 생각한 것도 나중에 보면 ‘공염불’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이를 ‘자다쿵(假大空)’이라고 부른다. 공산당과 중앙정부가 언론매체를 통해 전한 내용은 겉만 번지르르한 ‘장밋빛 청사진’으로 모두가 ‘자화(假話·거짓말)’거나 ‘다화(大話·큰소리, 흰소리)’거나 ‘쿵화’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자다쿵’은 지방 관리들의 ‘푸콰펑(浮誇風)’에 의해 뒷받침된다. 푸콰펑이란 실적을 과장 날조하는 중국 관리들의 풍조를 비꼰 말로 특히 ‘대약진 운동’(1958∼1960년) 기간에 심했다. 당시 쌀 생산량을 2, 3배로 늘려 보고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공산당은 최근 ‘새로운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아 농촌에서도 ‘샤오캉(小康·그런대로 먹고 살 만한 수준)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9억여 중국 농민은 경작권의 양도, 매매를 허용해 농민도 부자가 되게 하겠다는 공산당의 말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되레 그 과정에서 건설업자나 농업회사를 세운 기업가만 살찌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적지 않다.

중국인 전체의 평균소득이 7년마다 2배씩 느는 상황에서 농민의 소득은 12년 만에 2배로 늘리겠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약속이다.

도시에서는 이미 의료보험과 양로보험은 물론 공상(工傷)보험과 생육(生育)보험, 실업보험 등 5대 보험이 보장되고 있지만 농촌은 현재 의료, 양로보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대한 장밋빛 청사진보다 정말 도움이 되는 작은 복지 하나가 아쉬운 게 중국의 서민들이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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