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의회에 제출한 구제금융법안(긴급경제안정법)이 하원에서 부결됐다. 미 하원은 지난달 29일(한국 시간 30일 새벽)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해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05표, 반대 228표로 부결시켰다.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되면서 뉴욕 증시를 포함해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금값이 치솟는 등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로 치달았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지난주 종가보다 777.68포인트(6.98%) 빠진 10,365.45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사상 최대의 하락폭이다. 이날 하락폭은 9·11테러 이후인 2001년 9월 17일의 684포인트 하락폭을 넘어선 것이다.
30일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4.12%), 대만 자취안지수(3.54%) 등 아시아 주식시장이 동반 하락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30일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개장 초 200포인트 이상 오름세로 출발했다. 유럽 증시는 이날 개장 초 하락세로 출발했으나 점차 회복되는 등 혼조세를 보였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법안 수정-가결 1주일 필요 접점 못찾을땐 더 큰 혼란 “통과 안되면 美 악화일로” 부시 긴급성명… 의회 압박
전 세계 금융시장이 ‘마(魔)의 일주일’에 들어섰다.
금융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제시됐던 구제금융법안이 지난달 29일 미국 하원에서 부결되면서 이미 전 세계 금융시장 전체가 패닉에 빠진 상태다.
문제는 현재 의회 일정에 따르면 구제금융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미 하원은 유대교 휴일이 끝난 뒤 2일 속개해 2일 또는 3일 중에 새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는 계획이다. 민주 공화 양당이 수정안에 합의해도 이번 주말에야 의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안이 부결된 다음 날인 30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법안 통과 노력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라면서 ‘의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당분간 전 세계 주식시장은 수정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때까지는 크게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유동성 위기에 몰려 있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 가운데 자금사정이 더 악화될 경우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구제금융법안 부결 직후 ‘내셔널 시티코프’ 주가가 60% 폭락하는 등 유동성 위기에 몰린 미국 지방은행 주가가 폭락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 각국 중앙은행은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기 위한 공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민주 공화당 지도부가 새 법안에 대한 절충점을 찾는 데 실패하거나 법안이 하원에서 다시 부결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올해말까지 공매도 금지 코스피는 1,400선 지켜 환율 1207원으로 마감 8월 경상적자 사상최대
국제 금융시장과는 달리 서울 증시와 외환시장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됐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안정을 되찾으며 파고를 한발 비켜갔다. 원-달러 환율은 1200원을 넘어섰다.
금융위원회는 30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연말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고 자사주 매입한도를 총발행 주식의 1%에서 10%로 확대하기로 하는 등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놨다.
이날 서울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8.30포인트(0.57%) 내린 1,448.06으로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개장 직후 72.39포인트(4.97%)나 급락하면서 1,400 선이 곧바로 붕괴되는 등 한때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기관의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하락폭을 꾸준히 줄였다.
원-달러 환율도 장 초반 1230원까지 치솟았지만 환율 급등에 대한 경계감으로 달러 매물이 나오면서 안정을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8.20원 오른 120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03년 5월 29일(1207.00원) 이후 5년 4개월 만에 최고치다.
금융시장은 비교적 선방했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8월 중 국제수지동향’(잠정)에 따르면 경상수지 적자는 7월보다 21억8000만 달러 늘어난 47억1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1980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큰 규모. 올해 1∼8월 누적 경상수지 적자도 125억9000만 달러로 불었다. 특히 상품수지가 1996년 8월(29억 달러) 이후 가장 큰 규모인 28억20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