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법 “평화협상안 중지하라”

  • 입력 2008년 8월 6일 02시 59분


정부-반군 서명 하루 전 전격 결정… 아로요 대통령 입지 흔들

아시아의 분쟁지역 중 하나인 필리핀 민다나오 섬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협상안에 필리핀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협상안을 밀어붙여 온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타격을 받게 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대법원은 4일 아로요 정부와 필리핀 내 최대 이슬람 반군세력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이 합의한 평화협상안 추진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양측이 협상안에 최종 서명하기로 한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나온 결정이다.

협상안은 MILF의 영역을 확대하고 이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한편 민다나오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 및 관리를 포함해 각종 경제적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만1000명의 MILF 무장세력을 흡수할 자체 보안군 창설도 허용된다.

이는 아로요 정부가 10년간 끊겼던 MILF와의 대화 채널을 복원하며 의욕적으로 추진한 평화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협상안의 적법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15일 법정 심리를 통해 이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된 협상안은 위헌”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민다나오 지역 기독교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민다나오 섬은 MILF가 필리핀 내 모슬렘 5만여 명의 독립을 요구하며 40여 년간 게릴라식 무력투쟁을 벌여온 곳. 1970년대에는 MILF와 이 지역 기독교계의 무력충돌로 12만 명의 사망자와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MILF가 알 카에다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손잡고 힘을 키우면서 민다나오 섬은 동남아시아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하지만 금과 니켈, 구리 같은 광물자원이 풍부해 필리핀 정부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도 정세 불안 해소를 요구해 왔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 외신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필리핀 정부가 이 사안을 주목해 온 국제사회에 체면을 구기게 됐다”며 “앞으로 아로요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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