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언젠가 백악관에 여성을 쏘아 보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비록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데엔 실패했지만 이제 그 유리 천장에는 1800만 개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사진)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지난해 1월 20일 출마선언을 한 이래 ‘여성’이란 단어에 방점을 두지 않아 왔다. ‘여성 후보’를 강조하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7일 워싱턴 국립빌딩박물관에서 선거운동 종료를 선언하는 특별연설을 하면서 힐러리 의원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 근접권까지 다가갔던 여성’이라는 의미를 특히 강조했다. ‘유리천장’ ‘여성에 대한 편견과 장벽’ 등의 용어들도 마음껏 동원했다.

“50번째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지구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백악관으로도 여성을 쏘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득표한 1800여만 표를 유리 천장을 깨려는 1800만 개의 시도로 평가했다.

특히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난 80대, 90대 여성 지지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미국 헌법이 여성 투표권을 보장한 건 1920년이다.

“여성의 대권 도전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란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출마했다’고 대답해 왔다. 그러나…나는 여자다. 다른 수백만 명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나도 알고 있다. 여전히 장벽과 편견이 존재하고 있음을.”

경선 과정에서 몇 번 눈물을 글썽여 화제를 모았던 힐러리 의원은 이날 ‘통한의 패배선언’을 하면서는 시종 힘 있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청중의 대다수인 여성 가운데 상당수는 눈물을 글썽였다. 특히 일부 자원봉사자는 힐러리 의원이 “젊은 여성 여러분, 만약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면 내 가슴은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자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카고 자택에서 가족들과 인터넷으로 이를 지켜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힐러리 의원은 나의 딸들과 온 세상의 여성들을 대신해 장벽을 부숴줬고, (그 덕분에) 내 딸들은 자신들의 꿈에 제한이 없음을 알게 됐다”고 답례했다.

한편 힐러리 의원이 오바마 후보에 대한 적극 지지를 당부하자 청중석에서는 “우∼” 하는 야유가 나오고 일부는 엄지손가락이 바닥으로 향하는 부정적인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CNN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 의원 지지자 가운데 본선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는 60%에 불과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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