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앰버경보’ 미국이 시끌

  • 입력 2008년 4월 4일 03시 00분


미얀마계 7세 여아 실종 24시간 만에 피살체로

경찰, 신고 15시간 지나 경보 발령… ‘늑장’ 논란

"왜 '앰버 경보(AMBER alert)' 발령에 15시간이나 걸렸나?"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7세 소녀가 실종된 지 24시간여 만에 이웃집 청년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실종 신고를 받고 곧 수색에 나섰지만 미성년자 납치 사건 때 발동하는 경보는 신고 접수 후 15시간 후에 이뤄졌다.

이를 놓고 경찰이 늑장 대응한 게 아닌지, '앰버 경보' 발령의 적기는 언제인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앰버는 'America's Missing: Broadcasting Emergency Response'(미국 실종사건 방송 긴급 대응)의 약자. 1996년 텍사스 주에서 납치 살해된 앰버 해거먼(당시 9세) 양 사건을 계기로 구축됐다.

미성년자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유무선 통신수단과 지역 방송, 인터넷, 도로교통전광판 등을 통해 대중에 알려 공동체 전체가 어린이 구조와 용의자 체포에 나서는 시스템이다.

경찰의 발표와 솔트레이크트리뷴을 비롯한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한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경찰에 1일 오후 6시 10분경 "딸이 오빠들과 말다툼을 한 뒤 오후 2시에 집을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실종자는 지난해 미국에 온 미얀마 출신 난민 가정의 7세 소녀 서 네이 무 양. 경찰이 급파돼 수색에 나섰다. 이어 오후 9시 반경 검찰총장 직속 '어린이 납치 대응팀'이 회의를 했다.

호출 받은 자원봉사자 120명이 가담해 새벽까지 수색을 벌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경찰은 2일 오전 9시 반 앰버 경보를 발령했다. 증강된 수색팀이 조별로 나뉘어 다시 투입됐다. 경찰은 용의자 5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결국 이날 오후 7시경 소녀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棟)의 21세 남자 집 욕조에서 발견됐다. 심하게 구타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망 시간은 1일 오후로 추정됐고 성폭행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범인은 한 달 전 미국에 온 미얀마 난민으로 무 양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이 사건으로 경찰 대응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칼럼니스트 레베카 월시 씨는 "미성년자 납치 살해는 4건 중 3건이 납치 후 3시간 안에 이뤄진다"며 경보 발령 지연을 비판했다.

특히 밤샘 수색을 벌인 자원봉사자들이 2일 오전 7시경 경찰 상황실 앞에 다시 모였지만 "기다려 달라"는 경찰 측의 주문 탓에 마냥 대기하다 5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다시 투입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시 의회의 메릴린 브러시 의원은 "그렇게 많은 수색요원을 5시간 동안이나 마냥 기다리게 하다니 믿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역할 분담도 정확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원봉사자인 알렉스 로드리게스(34) 씨는 "할당된 지역에 도착했지만 거기는 이미 경찰이 수색하고 지나간 뒤여서 다시 본부로 돌아가야 했다"고 말했다.

물론 경보를 남용하면 경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경찰을 나무라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크리스 스나이더 경찰국장은 "앰버 경보를 너무 쉽게 발령하면 '늑대가 나타났다'는 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무 양의 가족이 영어를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워 납치 사건으로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4년 미국 전역에서 발령된 앰버 경보 233건 중 70건만 실제 납치 사건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앰버 경보는 이미 영국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 도입됐고 지난해 4월 이를 도입한 한국도 지난달 말까지 총 94건을 발령해 39명을 찾았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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