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있는 정치’ 워싱턴 레스토랑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라이스, 단골 해산물 요리집서 장관들과 회동

클린턴 퇴임만찬 식당, 의원들 비밀모임 잦아

33대 트루먼부터 43대 부시까지 다녀간 곳도



19일 오후 8시 미국 수도 워싱턴을 가로지르는 포토맥 강변의 워터게이트 호텔 1층 ‘600 레스토랑’.

해산물 요리를 주로 하는 이 레스토랑의 ‘그린 룸’에서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프라이빗 디너(사적 만찬)가 열리고 있었다. 창에는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출입구 쪽에는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 3명이 서 있었다.

이 식당의 부지배인 래리 존슨 씨는 “‘워터게이트 사우스’ 아파트에 사는 라이스 장관은 우리 식당에 매주 한두 번꼴로 오는 단골”이라며 “국무부 사람들은 물론이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등과도 이곳에서 더러 만난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스 장관은 2004년산 켄달 잭슨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과 농어 요리를 즐겨 먹는다”고 귀띔했다.

미국 상원 건물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모너클’은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상하원 의원들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20일 오후에도 이곳은 48년 전통을 자랑하듯 상하원 의원 보좌관과 로비스트들로 북적거렸다.

지배인 닉 셀리모스 씨는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시기지만 이곳에서만은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어우러져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며 “상하원 의원이 매일 한두 명씩 온다”고 말했다.

2005년 작고한 전 식당 주인 헬렌 발라노스(여) 씨는 민주당 출신인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의 대선캠프에서도 일한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였다. 하지만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심심찮게 이곳을 찾는다.

의사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코커스 룸’도 의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가장 워싱턴적인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이 식당에는 6개의 ‘프라이빗 룸’이 있어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정치인들이 모이는 장소답게 방 이름도 존경받는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 워싱턴, 제퍼슨, 아이젠하워,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룸으로 지어졌다.

매니저 잭 깅리치 씨는 18일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지금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이 여기서 식사하고 있다”며 “연방수사국(FBI) 요원들도 주요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이 식당은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퇴임 만찬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국무부 관리들은 간편한 ‘실무형’ 식사를 즐길 수 있는 킹케이드 레스토랑을 선호한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곳의 식탁 배치가 입구에서 가장 먼 테이블부터 차례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점.

이 식당에서 국무부 관리들을 더러 만난다는 한 고객은 “2층 가장 구석자리인 ‘테이블 1’을 차지하려면 최소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며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종업원을 빼고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로비스트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 여사는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듀퐁서클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리키’를 좋아한다. 시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北京) 근무 당시 맛본 ‘페킹 덕(베이징 오리구이)’에 매료돼 지금도 ‘페킹 고메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는다.

워싱턴 내 ‘젊음의 거리’인 조지타운에도 정치인들의 발길이 잦다.

그중에서도 1933년에 문을 연 ‘빌리 마틴스 태번’은 제33대 해리 트루먼 대통령부터 제43대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이 다녀간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단골손님인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청어 요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리버먼 상원의원도 부인과 함께 이곳에 자주 들른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지타운의 ‘카페 밀라노’와 ‘블랙솔트’ 레스토랑이 내가 워싱턴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라고 소개했다. 카페 밀라노는 콜린 파월, 도널드 럼즈펠드 전 장관 등 부시 행정부 1기 인사들이 자주 회동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방부의 대표적 한국통이었던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은 스테이크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조지타운의 ‘모튼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만나자고 하면 반색을 한다고 한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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