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엿새, 자본주의를 흔들었다”

  • 입력 2008년 3월 19일 02시 56분


■ 美정부 금융위기 긴급자금 투입 ‘일주일의 재구성’

美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긴박했던 몰락의 주말

《“지난 엿새가 미국 자본주의를 뒤흔들었다.”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파산 직전에 몰려 JP모건체이스로 인수되기까지의 긴박했던 ‘6일(3월 11∼16일)’을 월스트리트저널이 18일 내린 평가다. 주주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의 투자은행 중 하나가 몰락해 가는 과정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금융 관련 제도와 정책 대응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재무부 관계자들이 위기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비화(秘話)는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외신보도를 종합해 보면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과 벤 버냉키 FRB 의장은 법정 분쟁의 가능성마저도 감수하며 자금 지원에서 인수에까지 깊숙이 관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폴슨 재무장관은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FRB가 베어스턴스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면 금융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폴슨 장관은 자신의 생각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말에 긴급회동을 잇달아 가지며 85년 역사를 가진 베어스턴스의 매각 과정을 종료했다.

○ 사태 예상보다 심각

FRB는 11일 20개 대형 금융회사(프라이머리 딜러)를 대상으로 모기지채권 등을 담보로 국채를 최대 2000억 달러까지 빌려주는 ‘기간증권대출(TSLF·Term Security Lending Facilities)’을 이달 27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자금난에 시달린 베어스턴스를 지원하기 위해 동원된 조치.

그러나 FRB의 과감한 유동성 공급 정책에도 불구하고 베어스턴스와 거래를 하던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이 하나 둘 거래를 중단하고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13일 오후 7시 반. 베어스턴스는 긴급 콘퍼런스콜을 소집해 FRB와 재무부에 “내일 오전이면 파산을 신청해야 할 지경”이라며 “몇 주간 버틸 자금을 빌려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요청했다.

14일 오전 5시. 폴슨 장관과 버냉키 의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2시간 뒤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JP모건 창구를 통해 FRB가 긴급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때까지만 해도 폴슨 장관과 정부 관계자들은 중앙은행의 전격적 지원으로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고 전했다.

○ “법정에 서더라도 옳은 결정”

15일(토요일) 아침 폴슨 장관의 이러한 환상은 산산이 깨어졌다. 직접 통화한 몇몇 은행의 최고 경영진은 베어스턴스의 유동성 위기가 다른 금융회사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폴슨 장관은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말까지 베어스턴스를 팔지 못한다면 유동성 위기가 도미노처럼 금융시장으로 번질 것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오전 8시. JP모건의 제임스 디몬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뉴욕 본사로 소집됐다. 1시간 뒤 이들은 인수합병(M&A) 실사(實査)를 위해 베어스턴스의 본사로 이동했다. 저녁 무렵 JP모건 측은 베어스턴스에 “인수 의향이 있다”고 통보했다.

다음 날 아침 분위기는 역전됐다. JP모건 측 임원들은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베어스턴스의 회계 장부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저녁 무렵 JP모건은 베어스턴스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폴슨 장관은 협상에 직접 뛰어들었다. JP모건 측은 베어스턴스의 자산 일부만을 인수하겠다고 주장했으나 폴슨은 일괄 인수를 고집했다. 마지막으로 FRB가 베어스턴스 인수를 위해 300억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데 동의했다. 베어스턴스의 부실을 납세자에 떠안겼다는 정치적 부담도 무릅썼다.

협상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나는 주말에 이뤄진 결정이 절대적으로 옳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만약 베어스턴스가 파산으로 가도록 방치했다면 더 광범위한 금융시스템 위기로 확산됐을 것이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eaw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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