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일본이 분배서 성장으로 방향 튼 속사정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코멘트
“이미 일본은 경제일류(一流)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8일 일본 중참 양원 회의장. 술렁거림이 번져 나갔다. 국민의 대표들 앞에서 다른 각료도 아닌 오타 히로코(大田弘子) 경제재정상이 일본을 ‘이류 경제국’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내의 술렁거림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세계 총소득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은 24년 만에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중 18위로 주저앉았습니다.”

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이 ‘충격 발언’의 배경을 묻자 오타 경제재정상은 “일본의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할 때 성장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와 있다”고 대답했다.

이날 ‘성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재무상도 국회 연설에서 ‘성장력의 강화’를 올해 예산안의 가장 중요한 편성원칙으로 꼽았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도 시정방침연설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후쿠다 총리와 경제 각료들이 입을 맞춘 듯이 ‘성장’을 외친 것은 이례적이다. 후쿠다 내각 출범 이후 일본 정부와 여당은 줄곧 ‘양극화 해소’와 ‘지역에 대한 배려’ 등 분배 문제를 강조해 왔다.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 등의 경제개혁은 관성에 의해 움직일 뿐 속도는 눈에 띄게 떨어진 상태다.

분배의 강조를 통해 야당에 쏠린 지방의 민심을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후쿠다 내각과 자민당의 계산이다.

그럼에도 후쿠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다. 경제개혁을 통해 어렵게 되찾은 대외신인도마저 급전직하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후쿠다 정권 출범 후) 해외 투자자들은 일본 경제를 성장하지 않는 나라로 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런 탓에 일부 일본 언론은 18일 후쿠다 총리 등의 연설을 ‘(경제정책 기조를) 양극화 해소에서 성장으로 전환하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후쿠다 내각이 이류 경제국으로의 전락을 막기 위해 내놓을 후속대책이 무엇인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일본처럼 경제 ‘일류’를 맛보기도 전에 성장의 동력이 주춤해진 한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