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모르는 日 전자제품 천국 아키하바라

  • 입력 2008년 1월 15일 03시 05분


13일 오후 아키하바라 중앙로의 모습. 최근 아키하바라에서는 유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복장을 하고 판촉활동을 하거나 관광을 즐기는 외국인의 모습이 흔히 눈에 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13일 오후 아키하바라 중앙로의 모습. 최근 아키하바라에서는 유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복장을 하고 판촉활동을 하거나 관광을 즐기는 외국인의 모습이 흔히 눈에 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첨단의 무한 변주… “디즈니보다 재밌다”

《일본의 재래식 상점가는 최근 유통업체의 대형화 바람과 구매력 있는 인구의 감소로 심각한 불황에 휩싸여 있다. 문을 닫은 가게가 늘어나면서 ‘셔터 거리’가 상점가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최대의 전자상가인 오사카(大阪) 시 ‘덴덴타운’도 예외가 아니다. 덴덴타운은 2003년 이후 전자제품 매장의 폐업과 전업이 줄을 이으면서 머지않아 ‘전자의 거리’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덴덴타운과 동서(東西)를 양분하며 쌍벽을 이뤄 온 도쿄(東京)의 전자상가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는 상가 불황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결은 무엇일까. 주말에 아키하바라를 찾았다.》

○전자제품의 모든것 여기에

13일 오후 아키하바라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주오도리(中央通り). 공휴일이면 차량 통행이 통제되는 왕복 8차로 도로는 전자제품과 소프트웨어 등을 사러 나온 쇼핑객들로 온통 뒤덮여 있었다.

도로변 양쪽에 늘어선 전자제품 매장 앞에는 마이크를 든 판촉요원들이 1명이라도 손님을 끌기 위해 선전 문구를 목이 터지라 외쳐댔다. 목 좋은 대로변 매장 안은 물론이고 골목 안에 있는 소규모 부품가게와 중고전자제품가게도 몰려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키하바라를 찾는 쇼핑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JR아키하바라 역의 승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JR아키하바라 역을 이용하는 하루 평균 승객 수는 1997∼2001년에 12만∼13만 명 선이었으나 2005년 17만 명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06년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히비야(日比谷)선 아키하바라 역과 긴자(銀座)선 스에히로(末廣)초 역 등 아키하바라 지역 안에 있는 다른 전철역도 비슷한 추세다.

매장 면적 2만3800m²로 일본 전자양판점 중 최대 규모인 ‘요도바시 아키바’에는 2005년 9월 개점 후 1개월 동안 350만 명이 다녀갔다는 통계도 있다. 일각에서 ‘도쿄 디즈니랜드를 능가하는 고객 유인력’이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아키하바라에 이처럼 사람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자기기에 관한 한 과거에서 미래까지 없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애니메이션의 메카

아키하바라와 전자산업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직후 기술자들이 아키하바라 역 주변에 노점을 차리고 라디오용 부품을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이후 아키하바라는 전자산업의 발전에 맞춰 변신을 거듭해 왔다. 1960∼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가전제품이, 1990년대는 PC가 아키하바라의 간판이었다.

아키하바라는 ‘라디오 거리’ ‘가전 거리’ ‘PC 거리’의 모습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메카’로서의 면모를 가장 강하게 띠고 있다.

만화영화나 게임 등에 등장하는 메이드(하녀) 학생 해적 등의 복장을 하고 아키하바라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 중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서양인도 적지 않다. 아키하바라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진 서양 청소년들의 순례코스로 떠오른 데 따른 현상이다.

아키하바라가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아키하바라의 유행이 곧 일본의 유행이 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아키하바라의 독특한 지역 상품이던 ‘오뎅 캔’(어묵 통조림)이 전국적인 히트상품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미래 ‘IT 일본’의 얼굴

지난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수도권 주민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네 이미지 조사에서 아키하바라는 ‘변화가 심한 동네’ 1위에 꼽혔다. 아키하바라 일대를 둘러보면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키하바라의 지도와 스카이라인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바뀌고 있다. 우선 ‘요도바시 아키바’가 들어서면서 아키하바라의 범위는 지하철 야마노테(山手)선 동쪽(지도 참조)으로까지 넓어졌다.

2005년 3월에는 30층짜리 아키하바라다이빌딩이, 2006년 3월에는 22층짜리 UDX아카하바라빌딩이 완공됐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후지소프트가 후지소프트아키하바라빌딩을 준공했다.

현재 아키하바라다이빌딩 등에는 도쿄대 정보이공학계연구과와 메이지(明治)대 등 대학은 물론 히타치와 산요 등 기업, 독립행정법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등 정보기술(IT) 관련 기관의 입주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아키하바라 주민들은 이 같은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아키하바라를 IT 하드웨어와 콘텐츠뿐만 아니라 로봇 등 미래 첨단기술의 종합 실험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