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 20년’ 동유럽을 가다]<1>노조운동 발원지 폴란드

  • 입력 2008년 1월 14일 02시 58분


‘배고픈 자유’에서 ‘배부른 개방’으로… 제2변혁 잰걸음

《“지금도 조선소 앞을 지날 때면 그날의 기억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폴란드 그단스크 시 두가 광장의 주점에서 일시 귀국 기념으로 옛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던 안제이 밀레프스키(55) 씨. 1988년 8월 레흐 바웬사와 함께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자유노조 인정과 경제개혁을 요구하며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일이 그에겐 여전히 생생한 감격으로 남아 있다. 밀레프스키 씨는 “동료 대부분이 노조운동에 참여해 세상을 바꿨다는 기억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폴란드 변화 주역으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냈다. 오늘날 그는 스웨덴의 선박회사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

민주정부 출범후 정치싸움 극심… 경제 곤두박질

“차라리 옛날이 낫다” 한때 공산당 출신 재집권도

EU 가입후 친기업정책 전환… 年 6%대 고속성장

○ “자유는 얻었지만…”

동서 진영 간 대결이 한창이던 1980년, 전기공 출신인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공산권 최초로 결성됐다. 차근차근 세를 모아 나간 자유노조는 1988년 대대적인 파업과 민주화운동에 나섰고 1989년 자유선거에서 승리해 체제 전환을 이끌었다. 공산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체제 변화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로 변신하는 과정에 겪어야 하는 경쟁은 너무도 치열했고 좌파 정권의 등장은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다.

밀레프스키 씨는 “지금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을 보면 벅찬 감정을 느끼지만 파업 당시의 희망대로 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쉽게 치유하기 어려웠다. 체제 변화와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체제 변화 이후 20년이 되도록 좌우파 정권 교체로 세월을 낭비한 폴란드는 수도인 바르샤바만 벗어나면 대부분 도로가 왕복 2차로일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밀레프스키 씨 역시 고단한 노동자의 삶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폴란드의 유럽연합(EU) 가입(2004년 5월)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폴란드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길이었다. ‘제2의 체제 변화’로 불리는 EU 가입은 250만 폴란드 노동자가 더 많은 임금을 찾아 영국으로, 아일랜드로 쏟아져 나가는 탈출구를 마련했다. 연말을 맞아 잠시 귀국한 밀레프스키 씨도 이런 대열의 참가자였다.

○ 공산주의 청산은 미완성

바르샤바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37층 높이의 문화과학궁전은 옛 소련이 지어준 ‘스탈린의 선물’이다. 폴란드인들은 흔히 “바르샤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농담을 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이 건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과거사 평가에서도 이 같은 반소(反蘇) 기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한 1918년 시작된 정권을 제1공화국으로 부르지만 공산정권(1947∼1989년)은 공화국 국제(國制) 분류에서 아예 제외해 버렸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은 이와 별개다. 부동산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 대부분은 과거 공산독재 시절의 권력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공산세력이 권력에서 쫓겨나기 직전 토지 소유권을 챙긴 뒤 외국 기업에 팔아넘긴 결과였다.

두가 광장에서 인형을 파는 이레네우시 유레크(50) 씨는 “내 삶은 그대로인데 옛날 엘리트 집단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 “일반 시민, 체제 변화 경험 부족”

폴란드의 체제 변화는 시스템 측면에선 완성됐지만 사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야누시 시르메르 폴란드 경제연구소(CASE) 연구위원은 “일반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구조적 변화보다는 단지 생활 여건이 나아졌는지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변화의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찾아온 것이 바로 EU 가입이었다.

EU 가입 초기에 폴란드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보수우파인 ‘법과 정의당(Pis)’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2005년 대선에 승리한 뒤 가톨릭 원리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EU 통합 속도를 늦추며 시장 보호에 나섰다.

폴란드는 지난해 10월 총선을 계기로 비로소 변화를 향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폴란드 국민은 중도우파인 ‘시민강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도날트 투스크 당수는 총리에 오른 뒤 EU 통합 중시, 친기업 및 외국 투자 유치 장려 정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며 연 6%대의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공동으로 유치한 2012년 유로 축구선수권대회는 폴란드가 또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세광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장은 “2007∼2013년 EU 기금 673억 유로(약 91조 원)가 지원되면 놀라운 속도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단스크·바르샤바=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공산세력 부활 못막은 책임 통감

미래 위해 과거청산 최선 다할것”▼

마치에이 얀코프스키(사진) 솔리다르노시치(연대노조) 부위원장은 폴란드 국민이 자유 의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을 체제 변화의 가장 큰 의미로 평가했다. 연대노조 활동이 본격화된 1980년 노조에 가입해 1992년부터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해 12월 그단스크의 연대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나.

“사람들이 점점 체제에 적응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과거 공산주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체제 변화 후 공산당 출신이 재집권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바웬사 대통령 시절 초기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다. 1995년 대선에서는 공산주의 시절 계엄령을 선포했던 야루젤스키 전 공산당 서기장까지 출마했을 정도로 극도의 혼란이 이어졌다.”

―1988년 연대노조가 자유선거를 얻어 내는 대가로 공산당에 권력 분점을 해 준 결과라는 분석도 있는데….

“연대노조는 의회에 진출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게 기뻤던 나머지 다른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게다가 체제 변화 직후 공장은 폐허와 같았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경제 분야를 공산당에 넘겨준 것은 당시로선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결정은 공산주의자들이 재등장하도록 문을 열어 준 셈이 됐다.”

―젊은이들도 과거에 무관심한데….

“연대노조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2010년 8월 그단스크 조선소 입구에 연대노조 유럽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교육해 공산주의 집권이라는 과거의 질곡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