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자 육성공개, 자제해주세요” 언론들 경쟁보도 우려

  • 입력 2007년 7월 30일 20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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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된 피랍자들의 육성(肉聲)이 국내외 언론에 잇따라 공개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탈레반과 접촉해 피랍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탈레반의 심리전에 휘말려 결과적으로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26일 미국 CBS방송이 임현주(32·여)씨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이후 30일까지 유정화(39·여)씨 등 피랍자 4명의 인터뷰가 국내외 언론사를 통해 연이어 보도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탈레반이 국내외 여론 조성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인터뷰를 허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절박함을 호소하는 인질들을 앞세워 한국과 아프간 정부를 압박해 협상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것.

한국테러리즘연구소 최진태 소장은 "탈레반은 상업주의와 센세이셔널리즘에서 초연할 수 없는 언론의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 장사를 하고 있다"며 "언론 인터뷰 다음 단계는 처참한 상황에 있는 인질들의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 전공)도 "협상의 원칙이나 전략 차원에서만 말한다면 국내외 언론이 현재 탈레반의 도구가 되고 있으며 인질을 담보로 한 장사를 도와주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과 표 교수 모두 "언론들이 과열 속보 경쟁을 지양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대승적으로 협력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인터뷰 성사 과정에서 탈레반은 상당한 금전적 이득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현지 뉴스통신사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의 샤라파트 야쿠브 편집장은 3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인질과 연결되려면 현지 중개인 등에게 건넬 상당한 금액(special price)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KBS도 "탈레반이 인질과의 육성 통화 내용이 담긴 테이프가 있다며 접촉해 온 뒤 전달 대가로 2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24일에는 탈레반이 한국 정부에 피랍자와 전화 통화를 하는 대가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하기도 했다.

피랍자의 인터뷰 보도에 대해 피랍자 가족들 대부분은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피랍자 가족모임 대표 차성민 씨는 "탈레반이 육성 공개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며 "시간이 좀더 지나면 동영상을 공개하고 이로 인해 피랍자들의 억류기간만 더 길어질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족은 "억류된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면 처음에는 안도감이 들지만 이내 힘들고 아프다는 말에 마음이 더 아파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족들은 앞으로 피랍자들의 인터뷰가 보도되더라도 인터뷰를 한 피랍자가 누구인지와 가족들의 반응을 일체 밝히지 않기로 했다.

정부 역시 언론의 피랍자 육성 보도 자제를 촉구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브리핑에서 "피랍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저희들로서도 반갑지만 탈레반의 통제 하에 이뤄지는 심리전이기 때문에 보도에 신중을 기해 달라"며 인터뷰 보도 자제를 당부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피랍사태의 관련 정황을 파악하는데 참고가 되겠지만 인터뷰 자체가 피랍자의 무사귀환에 미치는 영향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가족들과 국민을 동요시키려는 탈레반 측 심리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황장석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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