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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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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경쟁력 강화에 팔 걷어붙여
일본 정부는 지난달 19일 각료회의를 열어 ‘성장력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 경제재정개혁 기본방침을 확정했다. 아베 정권의 경제운영 청사진에 해당한다.
기본방침에는 성장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국제금융센터로서 도쿄의 도시기능을 고도화하고 도쿄 도심에서 30분 이내인 하네다(羽田) 공항을 국제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금융청은 이에 따라 주오(中央) 구 니혼바시(日本橋) 일대의 용적률을 완화해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도는 2001년 6월 각의에서 ‘국토균형발전’ 방침을 폐기한 이후 주오 구 지요다(千代田) 구 미나토(港) 구 등 도심 3구의 용적률을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하네다 공항에서는 3개인 활주로를 4개로 늘리는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10월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연결하는 왕복 항공편이 신설될 예정이다.
일본올림픽조직위원회(JOC)는 지난달 7일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에 2016년 하계올핌픽의 도쿄 유치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같은 달 22일에는 도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고 활동에 들어갔다.
도쿄 도는 올림픽 재유치를 통해 체육·문화시설과 교통망 등 도시 기반시설을 일신할 계획이다.
○ 균형발전정책의 덫
일본 정부가 금과옥조나 다름없던 균형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도쿄 살리기에 나선 이유는 수도의 경쟁력을 감퇴시키고 지방의 예산을 파탄시키는 이중의 폐해를 더는 방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방 공공사업에 대한 예산 퍼주기는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1000조 엔이 넘는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일본 경제 전체의 견인차였던 도쿄의 국제경쟁력도 평등논리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싱가포르 및 홍콩 등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게 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도쿄의 국제회의 개최 건수는 1991년 세계 14위에서 2003년 47위로 추락했다.
하네다 공항의 기능을 국내선으로만 한정한 결과 도쿄는 도심에서 가장 먼 곳에 국제공항을 가진 세계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주식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도쿄의 증권시장 규모는 1990년 이후 지난해까지 58%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는 각각 56배, 21배, 11배로 커졌다.
마스다 에쓰스케(增田悅佐) JP모건증권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이 멈춘 주된 원인은 규제정책을 통해 도쿄와 오사카(大阪)를 억눌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 전문가들도 ‘도쿄 살리기’ 뒷받침
일본 정부가 도쿄·도심 강화정책을 가속화하는 것에 대해선 “지역 간 격차를 확대하고 도쿄의 혼잡을 유발하는 정책”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규제와 교부금 배분 등을 통해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균형발전정책으로 일본이 회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아베 정권은 올해 들어 미국의 주(州) 제도를 본뜬 ‘도슈(道州)제’를 도입하기 위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47개에 이르는 광역자치단체를 10개 안팎으로 통합해 각 주에 징세권과 독자적인 경제정책 결정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일본 정부의 도쿄·도심 강화전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마스다 씨와 대학교수 등 경제전문가 7명은 지난해 출간한 ‘도심회귀의 경제학’에서 “3차산업은 특정 지역에 인구가 몰려 있을수록 경쟁력이 높아진다”면서 “공업화 초기와 지금의 도쿄·도심 집중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 ‘균형발전’으로 부도난 홋카이도 유바리市
6일 오전 11시 반경 유바리 시의 관문인 신유바리역.
주민 3명과 관광객 2명 등 5명만을 태운 1량짜리 완행열차가 플랫폼을 출발했다. 26분 뒤 닿은 유바리역 앞에는 택시 2대가 서 있었다.
파산 선언 후 문을 닫았다가 올해 4월 다시 문을 연 석탄 테마파크로 향하는 동안 택시 운전사에게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물어봤다. “볼 게 있어야 오지요”라는 대답이었다.
방대한 주차장 주위에 들어선 게스트하우스, 숙박시설, 로봇관 등의 시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입장료 3150엔(약 2만5000원)인 테마파크를 찾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약 100명. 주말에는 입장객이 오히려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매표소 직원은 설명했다.
테마파크 가장 안쪽에 있는 놀이공원에도 출입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다.
놀이공원 앞 증기기관차전시관을 관리하는 사카이 데루아키(酒井輝昭·62) 씨는 놀이공원이 앞으로도 문을 열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서 “아깝다. 아깝다”를 연발했다. 그는 “유일하게 볼만한 곳은 석탄박물관이니 가보라”며 300m가량 떨어진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하갱도 내부를 활용해 만든 박물관은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그러나 관광객이 적어 안전모의 불빛에 의지해 혼자 걸어야 하는 어두컴컴한 지하갱도에선 고립감마저 들었다.
이처럼 유바리 시가 벌여놓은 무모한 관광사업의 결과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시 측이 빚을 갚기 위해 각종 세금과 공공요금을 인상하며 서비스를 줄이고 있기 때문.
주민 야마모토 미에코(山本美惠子·61·여) 씨는 올해 경자동차용 세금만 해도 7200엔에서 1만 엔으로 올랐다면서 “남편의 연금만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시립 유바리도서관 겸 청소년상담센터 건물 앞에도 예산 부족으로 문을 닫는다는 공고문이 걸려 있었다. 무성한 잡초와 깨진 타일조각, 어지럽게 널린 잡동사니들을 보며 ‘죄 없는 어린이들도 무모한 공공사업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유바리=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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