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고도 너무낮다” 조종사 “잘 아는 지역…문제없다”

  • 입력 2007년 6월 28일 03시 01분


시신 수습… 프놈펜 병원 이송캄보디아 구조대원들이 27일 보코르 산 기슭에 추락한 여객기 잔해에서 수습한 시신을 헬기로 옮기고 있다. 탑승객 22명의 시신은 모두 수도 프놈펜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캄포트=연합뉴스
시신 수습… 프놈펜 병원 이송
캄보디아 구조대원들이 27일 보코르 산 기슭에 추락한 여객기 잔해에서 수습한 시신을 헬기로 옮기고 있다. 탑승객 22명의 시신은 모두 수도 프놈펜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캄포트=연합뉴스
훈 센 총리 사고 브리핑캄보디아 추락 여객기의 잔해와 탑승자 시신이 발견된 27일 캄포트 주 청사에서 훈 센 총리(오른쪽)가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캄포트=박영대 기자
훈 센 총리 사고 브리핑
캄보디아 추락 여객기의 잔해와 탑승자 시신이 발견된 27일 캄포트 주 청사에서 훈 센 총리(오른쪽)가 사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캄포트=박영대 기자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짙은 안개까지 겹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한국인 여행객 13명을 포함해 22명을 태운 캄보디아 PMT 항공사의 AN-24기가 시엠리아프에서 시아누크빌을 향해 출발한 지 35분쯤 지난 시점이었다.

“2000피트(약 600m)로 날고 있다.”(조종사)

“4000피트(약 1200m)로 날아야 하는 지점이다. 고도가 너무 낮다.”(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

“내가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다. 문제없다.”(조종사)

이 짧은 대화가 사고 비행기와 관제탑 간 마지막 교신이었다. 교신이 끝난 직후 비행기는 바로 앞의 보코르 산 동북쪽 기슭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구조신호를 보낼 틈조차 없었다. 레이더에서는 비행기 신호가 갑자기 사라졌다….

▽자만심이 부른 참사=27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확보해 공개한 교신 내용에 따르면 비행기는 조종사의 실수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아누크빌 공항으로 진입하는 항로 50km 지점에는 해발 1080m의 가파른 보코르 국립공원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다. 산 높이를 감안할 때 비행기는 최소 1200m의 고도를 유지해야 했지만 조종사는 악천후 속에서도 관제탑의 경고를 무시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사고 비행기 조종사가 니콜라이 파블렌코라는 이름의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비행기 날개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추락 지점에 나무가 쓰러진 곳이 반경 20여 m에 불과한 것으로 미뤄 비행기가 거의 수직 추락했으며 그로 인한 충격도 엄청났을 것으로 진단했다.

더구나 당시 비행기는 정상 항로를 이탈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작업에 참여한 한 군 조종사에 따르면 비행기는 시아누크빌로 가는 항로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비행 중이었다. 이 때문에 정상 항로를 기준으로 추락 지점을 수색해 온 수색대의 현장 발견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 불안 요인=당초 수색 관계자들은 사고 원인으로 악천후를 거론했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고 원인에 대해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기상 악화로 인한 것”이라고 악천후 쪽에 무게를 실었다.

과거에도 사고를 자주 낸 낡은 기종의 안전성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개발된 지 40년이 넘은 러시아제 AN-24는 2005년에도 러시아 북부 바란데이에서 추락해 29명이 사망했다.

이에 대해 PMT 항공사 측은 “사고 비행기는 출발 당시 상태가 좋았고, 운항의 기술적 안전 요건을 갖췄다”며 “블랙박스 내용을 판독할 때까지는 사고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훈 센 총리는 이날 “캄보디아에서 운항되는 모든 여객기를 조사해 너무 낡은 기종들은 비행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프놈펜=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처참한 현장… 여권 주민등록증 나뒹굴어

유족들 “날씨만 좋았더라도…” 오열… 실신▼

캄보디아 추락 여객기가 실종된 지 45시간여 만인 27일 오전 탑승자 전원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캄보디아나 호텔에 모여 있던 유가족들은 “날씨만 좋았어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오열했다. 일부 유족은 그 자리에서 실신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은 추락 당시 탑승자들이 받았을 충격이 느껴질 만큼 참혹했다.

동체 앞부분이 파손돼 비행기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천장 곳곳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한국인 승객들의 여권과 주민등록증 등 소지품들이 기체 주변에 나뒹굴었고 운동화가 기체 밖으로 튕겨 나와 있었다.

한국인 13명을 포함한 탑승자 22명은 기체 밖에서 발견된 1명을 제외하고는 기내 곳곳에서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캄보디아 선교사협의회 의료팀 소속으로 현장에 들어간 치과의사 김성녀(37·여) 씨도 “시신들이 앞쪽으로 심하게 쏠린 상태였다”며 “기체 파손이 너무 심해 구겨진 듯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오후 7시 30분 현재 시신 22구가 모두 캄보디아-러시아 프렌드십 국립병원으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이 병원 내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으나 장소가 협소해 한국인 사망자의 시신들은 인근 카르마트 병원으로 옮겼다.

정부는 프놈펜 시에 파견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의료진의 시신 확인이 끝나는 대로 29일 특별기편으로 한국으로 운구한다는 방침이다.

시신이 확인되면서 보상 문제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숨진 가이드 박진완 씨와 만 1세 미만인 조윤민 군을 제외한 한국인 탑승객 11명은 하나투어에서 아메리칸해상화재보험(ACE보험)이라는 여행자보험에 단체로 가입한 상태라 최대 1억 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또 조종사 과실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사고 항공사인 PMT항공이 유족에게 거액을 배상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캄보디아 수색팀은 이날 9대의 헬기와 2000명의 군경요원 등 인력을 대거 보강해 수색작전을 펼쳤다. 태국 미군기지도 대잠수함 초계기인 P-3C를 캄보디아에 투입해 수색작업을 지원했다.

수색작업을 진두지휘한 훈 센 총리는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 군인들은 사고 여객기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한국이 캄보디아 외국인 투자 1위 국가일뿐더러 국가별 관광객 수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의 비중을 감안해 총리가 직접 나서서 수색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놈펜=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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