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펑크 낸 술고래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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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 독일 방문 중 화이트와인을 마시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1994년 5월 독일 방문 중 화이트와인을 마시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쿠데타 저지 용기 보드카 덕분일지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보드카에 탐닉했다. 엄밀히 말하면 알코올의존증 환자라고 할 수 있다. 사망원인으로 발표된 심장 발작도 알코올의존증이 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공사장 작업반장 출신인 그는 한 번 마셨다 하면 엄청 마셨다. 술에 취해 정상회담을 펑크 낸 일도 있다. 1994년 9월 미국 방문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아일랜드 샤논 공항에 기착해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와 만날 예정이었다. 총리 일행을 활주로에서 기다리게 한 채 1시간 넘게 공항 상공을 선회하던 비행기가 결국 착륙했지만 옐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 관계자들은 ‘옐친이 깊이 잠들었다’고 해명했으나 양국 언론은 그가 술에 곯아떨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레이놀즈 당시 총리는 23일 BBC 방송에서 “훗날 유럽정상회의에서 만난 옐친 대통령이 ‘부하들이 깨우지 않았다’고 해명하며 사과했다”고 회고했다.

해외 행사에서 대뜸 악단을 지휘하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1994년 8월 독일을 방문한 그는 베를린 시의 야외광장에서 군악대 환영 연주회에 참석했다. 연주회가 무르익어 갈 즈음 갑자기 지휘자 자리에 나서 자기 흥에 겨워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은 독일 TV에 생방송됐고 언론은 이 사건을 ‘술’ 탓으로 돌렸다. 전날 정상회담 후 만찬회에서 퍼마신 술이 미처 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 역사의 극적인 순간 중 하나인 1991년 8월 보수 강경파의 쿠데타 당시 옐친이 자신을 체포하려 출동한 탱크 위에 올라가 열변을 토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보드카 덕분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연예계의 술꾼으로 꼽히는 배우 이영하 씨는 2005년 한 방송에서 옐친 전 대통령이 1992년 방한했을 때 그의 술상대로 청와대 만찬에 초청됐다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화보]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영결식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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