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사건 여파 유학·어학연수 '찬물'

  • 입력 2007년 4월 18일 14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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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미국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어학연수나 조기유학 계획을 늦추거나 목적지를 바꾸는 등 유학업계로 불똥이 튀고 있다.

유학원과 연수 알선 업체들에 따르면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18일 아침부터 예약 취소나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업체들은 이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오래 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 여름방학 때 초중학생들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내보내기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는 알선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K사는 7월 출발 예정인 1년 단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할 중학생 28명을 모집했지만 이날 4명의 학부모가 예약 취소를 통보했다. 학부모들은 이미 3월에 예약금 200만 원을 냈지만 예약을 취소하길 원했다.

K사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예약금을 포기해도 좋으니 일정을 1년 정도 늦추거나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면서 "미국에서 홈스테이할 가정과 학교까지 확보해 둔 상황이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어학연수 전문인 서울 A사에도 신청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 이 업체는 이번 주말에 예약 희망자 40명을 대상으로 반 배정을 위한 영어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10명 이상이 평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왔다는 것.

A사의 미주 담당자는 "미국 신청자는 물론 캐나다 신청자들까지 이번 사태의 파장을 우려해 필리핀 등 동남아로 연수지를 바꾸겠다는 학부모도 있다"면서 "가격이 비슷한 영국 등을 권해도 '백인이 많은 곳은 당분간 피하고 싶다'는 부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초등생 아들을 3주간 미국에 보내려던 김모(서울 강남구 대치동) 씨는 "어학연수도 좋지만 아들이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돼 포기했다"며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겨울방학에 연수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여름방학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관련 업체들은 연수 지역을 미국에서 다른 국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단체 연수가 가능한 국가의 경우 괜찮은 숙박시설이나 강사 등은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여서 연수지 변경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소규모 유학업체들이 프로그램을 급조해 유학생을 모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학생 이상 성인 유학생은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유학을 준비하기 때문에 갑자기 취소하거나 다른 학교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 일단 유학 시기를 늦추려는 문의가 많다.

김정관(27) 씨는 "9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며 "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입학 허가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예 북유럽 국가로 유학지를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인 김진영(31·여) 씨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입학전형 과정에서 한국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며 "한국 학생끼리 도서관에 가는 일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유학원 관계자들은 "미국의 연수 알선 파트너나 대학들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면 유학과 어학연수 시장이 1년 정도 얼어붙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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