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관리’가 국가 장래다]<2>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미국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코멘트
‘선 시티’ 수공예 교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은퇴자를 위한 도시 ‘선 시티’ 1호에 거주하는 은퇴자들이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개설한 수공예 교실에서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건설회사인 델 웹이 개발한 선 시티는 현재 미국 전역에 15곳이 있다. 피닉스=손효림 기자
‘선 시티’ 수공예 교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은퇴자를 위한 도시 ‘선 시티’ 1호에 거주하는 은퇴자들이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개설한 수공예 교실에서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건설회사인 델 웹이 개발한 선 시티는 현재 미국 전역에 15곳이 있다. 피닉스=손효림 기자
“은퇴 준비 일찍 시작했죠. 취직하자마자 사회보장연금, 기업연금 등을 붓기 시작했으니까 직장 생활과 동시에 한 셈이죠.”

간호사로 일하다 1997년 은퇴한 미국인 제니 스미스(72·여·워싱턴) 씨는 30여 년간 부은 연금 덕분에 생활비 걱정 없이 살고 있다. 딸이 하나 있지만 용돈이나 생활비는 일절 받지 않는다.

미국은퇴자협회(AARP) 회원인 그는 이곳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여행이나 건강정보를 덤으로 얻고 있다.

미국의 은퇴자들은 사회보장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 등 ‘트리플 연금시스템’의 체계적인 지원으로 비교적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은퇴자 관리에 AARP 등 민간단체가 정부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미국의 평균 은퇴 연령은 62세인데, 보통 은퇴 전까지 계속 연금을 붓는다.

누구나 취직하면 연간 급여의 7.65%를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로 낸다. 기업도 같은 금액만큼을 부담하기 때문에 1인당 연간 급여의 15.30%가 나가는 셈이다. 자영업자는 수입의 15.30%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사회보장세는 은퇴 후 사회보장연금으로 돌려받는다.

기업연금 가입도 일반화돼 있다. 미국 근로자연금연구소(EBRI)에 따르면 2004년 말 현재 기업연금을 붓고 있는 직장인은 8400만 명으로 전체 민간업체 근로자의 75%에 이른다.

특히 연간 1만5000달러(약 1425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있는 401K에는 1620만여 명이 가입해 있다.

401K는 미국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 401조 K항에 규정돼 있는 기업연금으로 펀드, 주식, 채권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개인연금을 넣는 것도 보편화돼 있다.

대학 교직원 출신으로 1995년 은퇴한 잭 애슬리(75·피닉스) 씨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사회보장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을 꼬박꼬박 넣어 현재 월수입 중 연금 소득이 60%를 차지한다”며 “은퇴 전과 비슷하게 생활하면서 월 20%는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EBRI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미국인의 평균 수입원은 △사회보장연금 40.1% △기업연금과 개인연금 19.3% △자산소득 13.6% △근로소득 24.8%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연평균 연금소득은 남성의 경우 민간 부문 종사자가 1만3920달러(약 1322만 원), 공공 부문은 2만6682달러(약 2534만 원)였다.

○정부와 민간의 조화

“모든 사람이 품위 있게 나이 들어가는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목표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AARP의 역할입니다.”

워싱턴의 AARP 본부 로비에 들어서자 이런 내용의 큼지막한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1958년 설립된 AARP는 50세가 넘는 사람들이 가입하는 비정치기구로 현재 380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는 미국의 50세 이상 인구 중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AARP는 막강한 조직력을 배경으로 각종 정부 정책이 은퇴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안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고용이나 해고를 하지 않는 ‘연령차별금지법’이 1967년 제정된 것도 AARP가 이뤄 낸 성과 중 하나다.

매튜 선태크 AARP 정책 연구원은 “재취업 안내, 세금 컨설팅, 법률 서비스, 주택마련 지원 등 은퇴자를 위한 각종 서비스를 실비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건설업체인 델 웹의 창업자 델버트 유진 웹 씨가 세운 은퇴자를 위한 도시 ‘선 시티’도 은퇴자 관리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민간 부문의 활동상을 잘 보여 준다.

○은퇴자 대상 상품 판매 경쟁 치열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기업연금은 물론 개인연금을 유치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JP모건 지미 뷸러 연금담당 연구원은 “미국의 은퇴자 대상 금융시장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약 15조 달러로 추산된다”며 “최근에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보다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원금보장형 상품이 은퇴자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찰스 스와프 증권사는 미국 뉴욕 JFK공항에 ‘나의 401K(기업연금)는 더 나은 운용처를 찾고 있다’는 대형 광고판을 세우고 기업연금 고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연금제도가 잘 구축돼 있는 미국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정부의 역할이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AARP 간행잡지인 ‘AARP 불리틴’의 편집자 제임스 토트먼 씨는 “직장이 없거나 불법 체류자 등 사회보장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미국 전체 인구의 50%에 이른다”며 “저소득층 은퇴자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경제부>

이강운 차장(팀장) kwoon90@donga.com

워싱턴·뉴욕·피닉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런던·옥스퍼드·암스테르담=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도쿄=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 동아닷컴 재테크세미나 안내 “이것만 알면 나도 은퇴설계 할 수 있다”

■ 은퇴자 천국 ‘선 시티’

“집과 차 임차료 등을 모두 합쳐 한 달에 2000달러(약 190만 원)면 충분합니다. 여기에는 수영, 헬스 및 각종 레크리에이션 비용이 다 포함돼 있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는 은퇴자 도시 ‘선 시티’ 1호에서 만난 젠 칼리(76) 씨는 이곳의 저렴한 물가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20년간 직업군인으로 복무한 뒤 개인사업 등을 하다가 은퇴한 그는 1992년 피닉스 선 시티로 이주했다.

2만6000여 가구, 4만여 명이 거주하는 선 시티 1호 주민의 평균 나이는 73.5세.

이곳에 입주하려면 가족 중 한 사람이 55세 이상이고, 나머지 가족도 모두 19세가 넘어야 한다. 주택은 1억5000만∼5억 원이면 살 수 있고, 도서관 체육관 등 각종 편의시설과 야간 방범활동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된다.

‘선 시티 방문자 센터’와 도서관 등에서는 백발의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이 방문자들을 반겼다. 도시 곳곳에서는 골프 카트를 타고 한가롭게 이동하는 노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수영장, 헬스클럽, 볼링장 등 체육시설은 물론 수공예 및 목공예 교실 등 각종 레크리에이션 시설에도 노인들로 가득했다.

선 시티 총책임자인 폴 헤르만 씨는 “선 시티는 교육세 등이 면제돼 인근 지역에 비해 세금이 연간 기준으로 61%나 싸다”며 “연회비 10달러만 내면 댄스, 헬스, 목공예 등 각종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고 골프 라운드도 3달러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매년 가구당 연회비 380달러(약 36만1000원)를 내는 것 외에는 별도 비용이 거의 없다”며 “선 시티 내에 자기 집이 있으면 부부가 생활하는 데 월 120만∼15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선 시티에 처음 입주할 때 가구당 회비 300달러(약 28만5000원)를 내고, 주택을 구입할 경우 도시 운영비 2500달러(약 237만5000원)를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선 시티는 애리조나 외에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텍사스 등 미국 전역에 걸쳐 15곳이 만들어졌다. 현재도 추가로 건설되고 있지만 토지 매입비용이 상승해 새로 건립된 곳일수록 주택가격이나 연회비 등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 동아닷컴 재테크세미나 안내 “이것만 알면 나도 은퇴설계 할 수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