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광고 유행은 ‘희극적인 폭력’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6분


야외파티에서 딱 한 병밖에 남지 않은 맥주를 동시에 잡은 두 남자.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결정하려는 순간 한 남자가 ‘바위’를 내는 대신 진짜 돌멩이를 상대방의 머리에 집어던진다. 쓰러진 상대방을 바라보며 맥주를 낚아챈 남자의 한마디.

“내가 바위를 냈잖아(I threw a rock).”

마지막 부분이 영어발음상 ‘이라크를 던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15초짜리 동영상은 미국의 맥주 ‘버드라이트’ 광고다.

4일 열린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41회 슈퍼볼의 인기를 노리고 올해도 중계방송 전후로 수많은 TV광고가 새로 선보였다. 이번 광고들은 상당수가 ‘폭력을 앞세운 유머’의 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6일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전쟁의 여운이 상업광고의 폭력성 밑에 숨어 있다”며 관련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라크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거나 중동의 전쟁을 소재로 한 광고는 없지만 쓴웃음을 짓게 하는 희극적 싸움이 은유적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

페덱스 광고는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유성에 맞아 날아가는 장면을 표현했다. 내비게이션 업체 ‘가민’은 지도로 만들어진 거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초인적 ‘내비게이션 맨’을 광고 소재로 내세웠다. 리크루팅 업체 커리어빌더는 정글 속에 갇힌 직장인들의 게릴라 전투로 광고를 꾸몄다.

지난 4년간의 악몽 같은 전쟁이 꿈이었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광고들도 있다.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 남편 케빈 페더린이 잘 나가는 가수로 등장하지만 알고 보니 패스트푸드 점원으로 일하면서 꾼 꿈이었다는 내용은 한 보험회사의 광고.

GM의 광고에는 나사 하나를 빠뜨리는 실수에 괴로워하는 자동차 조립로봇이 나온다. 자살까지 고민하다 깨어 보니 꿈인 것을 알고 안도하는 이 로봇이 전하는 메시지는 ‘GM의 품질 강박증’.

이런 광고는 과거 다른 전쟁 기간에 전파를 탔던 광고와는 차이를 보인다. 유명 광고회사들이 밀집한 뉴욕의 매디슨 애버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평화를 주제로 한 광고를 많이 내놨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코카콜라 병을 든 채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자’고 노래하는 ‘힐탑’ 광고가 대표적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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