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억달러 최악 적자… 포드 ‘빨간불’

  • 입력 2007년 1월 27일 03시 11분


《미국 워싱턴에 사는 제이미 리(40) 씨는 최근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장만하면서 거듭 망설였다. 메릴랜드 주의 한 포드자동차 대리점에서 소형 SUV인 이스케이프 2007년형 모델을 소매가격(MSRP)보다 5000달러나 깎아 준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이와 달리 동급 차종인 일본 혼다의 CR-V와 도요타의 RAV4는 할인을 거의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리 씨는 혼다를 택했다. “몇천 달러 더 주고 사도 몇 년 뒤 중고차 값을 생각하면 일본 차가 낫다”는 카센터 주인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25일 미국 사회는 포드차가 창업 103년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발표에 다시 한번 우울해했다.

▽최대 적자=포드차는 “2006년도 적자가 127억 달러(약 12조 원)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한 대 팔 때마다 1925달러(약 190만 원)씩 적자를 본 꼴이다.

GM과 크라이슬러도 적자가 예상돼 1991년 이후 처음 ‘빅 3’ 모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앨런 멀럴리 포드 사장은 “올해와 내년에도 적자는 계속되겠지만 2009년에는 흑자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적자엔 구조조정 비용도 영향을 미쳤다. 포드차는 2012년까지 3만8000명의 시간제 노동자를 퇴직시키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연봉직 화이트칼라 1만4000명도 감원되며 공장 16개를 폐쇄할 계획이다.

▽자동차 종가(宗家)의 성쇠=1903년 헨리 포드가 창업한 이래 1970년대까지 포드차는 경영의 전범(典範)처럼 여겨졌다. 선두 자리는 GM에 내줬지만 1990년대 말까지도 막대한 현금 보유액을 자랑하는 회사였다.

그런 포드차가 위기로 내몰린 원인을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경영 실패와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서 찾는다. 포드는 우선 2000, 2001년 정보기술(IT) 산업 쪽으로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현금을 많이 잃었다.

또 대표 모델이었던 익스플로러의 타이어 전복 사고에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타이어 제조 회사에 책임을 전가하려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말았다. 고유가 때문에 대형 4륜 구동차의 인기가 줄어드는데도 외양만 조금씩 손봐서 내놓는 구태의연한 대응을 되풀이해 왔다는 점도 지적된다.

구조적으로는 과다한 복지비용과 경직된 노사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포드의 덩치 큰 차들이 잘 팔릴 때는 노사관계가 비정상적이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시장 환경이 변해 차가 잘 안 팔리기 시작했는데도 경직된 노사관계 때문에 신속히 대처할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포드와 GM은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요구에 밀려 현직 종업원은 물론 퇴직자, 가족에게까지 의료보험과 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협약을 맺었다. 포드차 1대에는 1500달러가량의 복지비용이 포함돼 있다. 도요타는 180달러, 혼다는 107달러에 불과하다.

‘유산 비용(legacy cost)’으로 불리는 이런 비용은 결국 대규모 구조조정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부품업체에 일방적으로 납품 단가를 낮추고 딜러에게 재고를 떠맡기는 방법이 통하기 어려워진 사업 환경도 어려움을 더했다. UAW는 지난해 퇴직자 보험과 근무 규칙에 관해 일부 양보를 했지만 하향곡선을 되돌리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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