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을 가다]<10>벨기에 아이코스비전

  • 입력 2007년 1월 23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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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영상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아이코스 비전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최강 미니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에 장비를 납품하며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컘고 있다. 사진 제공 아이코스 비전
반도체 영상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아이코스 비전은 벨기에의 대표적인 최강 미니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에 장비를 납품하며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컘고 있다. 사진 제공 아이코스 비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1만5000여 개의 장비·부품 납품회사 중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만 수여하는 ‘협력업체 품질 대상’을 아이코스 비전은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수상했다. 사진 제공 아이코스 비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1만5000여 개의 장비·부품 납품회사 중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만 수여하는 ‘협력업체 품질 대상’을 아이코스 비전은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수상했다. 사진 제공 아이코스 비전
벨기에 브뤼셀에서 서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뢰벤 지역에 위치한 아이코스 비전사(社). 반도체 영상검사장비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영상검사장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벨기에의 대표적인 강소(强小) 기업이다.

메모리반도체 최강국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비롯해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이 모두 이 회사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기자를 맞은 이 회사 재무담당 임원 에르빈 반덴드리시 이사는 이 회사가 납품업체와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상(賞)이 전시된 접견실로 취재팀을 안내했다. 그는 20여 개의 상들 중 인텔로부터 2005, 2006년 2년 연속 수상한 ‘Preferred Quality Supplier Award(협력업체 품질 대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인텔에 납품하는 1만5000여 개의 장비·부품 회사 중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만 주는 상이라는

[연재]세계 최강 미니기업을 가다
- <1> 네덜란드 ‘가초미터’
- <2> 보청리 제조 덴마크 ‘오티콘’
- <3> 욕실매트제조 체코‘그룬트’
- <4> 요트제조 네덜란드 ‘로얄 하위스만’
- <5>‘마사이 신발’ 만드는 MBT
- <6> 덴마크 ‘포스’
- <7> 오스트리아 ‘프레크벤티스’
- <8>기상관측기 만드는 ‘바이살라’
- <9>자동화 로봇 스위스 ‘귀델’
설명이다.

회사의 실적도 2000년 이후 매년 10∼15%씩 좋아지고 있다. 2005년에는 8000만 유로(약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도 매출의 22.5%인 1800만 유로나 챙겼다. 올해도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이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270명의 본사 직원과 85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의 중소기업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기엔 마술과 같은 성적이었다.

○시장친화적 기술력이 ‘마술’의 비결

반도체 장비 업계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웨이퍼에 반도체를 제작하는 전(前) 공정에 비해 기술력이 떨어지는 성능 테스트, 패키징(포장) 등의 후(後) 공정 분야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 한순간만 방심하면 도태되기 십상이다. 아이코스 비전이 만드는 영상검사장비는 후 공정 장비에 속한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1982년 벨기에 뢰벤대 연구실에서 분리돼 나와(spin-off) 창업한 뒤 25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불량과 오류를 100%에 가깝게 잡아내며, 검사 속도도 경쟁사 제품에 비해 2.5배나 빠르다. 반도체 생산업체로서는 이 회사 장비를 쓰면 업무 효율성이 훨씬 높아지는 셈이다.

반덴드리시 이사는 “There is no magic in this company(이 회사에 마법은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최고의 반도체 장비업체의 자리에 오른 것이 결코 운이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의 15∼18%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력의 근본 힘은 ‘시장을 이해하는 기술’에서 나오고 있었다. 카를 스메츠 R&D 담당 이사는 “우리 R&D 인력은 절대 ‘뒷방’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연구원들이 시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마케팅 회의에 참석시키며 인텔이나 삼성전자 등 납품업체에도 정기적으로 방문해 고객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있다”며 “고객과의 상시적인 교류의 결과를 즉각 R&D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우리 회사 기술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틈새시장 공략

뢰벤대 연구실에서 분리돼 나올 당시만 해도 이 회사는 다양한 검사 장비를 생산했다. 과일의 잔류 농약 측정 장비를 포함해 다양한 의학용 장비까지 30여 개 품목을 만들었다.

여기저기 손댔지만 만족할 만한 수익이 나지 않자 1985년 이 회사는 반도체 검사장비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이듬해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반도체 후 공정의 몇 가지 검사 기능을 통합한 장비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메츠 이사는 “사업 초창기에 다양한 장비들이 약간의 수익을 내고 있었지만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을 예상해 관련 장비 시장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한 것이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1998년에는 독일의 집적회로(IC) 검사 장비 생산업체인 큐텍을 인수하는 등 1990년대 후반부터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관련 업체들을 인수해 외형을 키운 것도 주효했다. 현재 큐텍 본사는 아이코스 비전의 R&D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

○아이코스 비전은 ‘작은 우물 속 큰 물고기’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후 공정 장비 분야보다 전 공정 장비 관련 사업 비중이 훨씬 크지만 이 회사는 사업 영역을 함부로 확대하지 않았다.

이른바 ‘작은 우물 속의 큰 물고기’ 전략으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반덴드리시 이사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전 공정 장비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지만 ‘큰 우물’로 함부로 뛰어들기보다는 ‘작은 연못’에서 확실한 ‘제일 큰 물고기’가 되는 것이 규모가 작은 기업에는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돈만 벌면 본 사업보다 다른 사업에 기웃거리는 한국의 일부 기업이 귀담아들을 만한 말이었다.

이 같은 전략 덕에 아이코스 비전은 반도체 영상검사장비 시장에서 70%를 점유하며 여러 경쟁사를 도태시켰다. 경쟁사인 R사와 C사에 비해서도 월등한 실적을 내고 있다.

스메츠 이사는 “우리는 경쟁사들이 쫓아 올 만하면 새로운 기술로 달아나면서 이미 상당한 격차를 벌려 놓았다”며 “최고의 품질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팔아 다른 업체들이 더는 경쟁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브뤼셀=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비전을 보여주는 인재경영

“최고의 급여보다 도전하는 삶 보람”

아이코스 비전은 돈을 잘 버는 회사지만 직원들의 급여 수준은 경쟁사나 일반 벨기에 기업에 비해 높지 않다.

에르빈 반덴드리시 재무담당 이사는 “우리는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하지 않고 있으며 당장 최고로 대우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큰 수익을 내는 알짜기업이 이처럼 ‘짠물 경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당장 최고로 대우해 주기보다는 직원들이 회사의 장기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기 부여에 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수익금을 직원 급여를 인상하는 데 쓰지 않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최고의 회사가 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쟁사가 절대 넘볼 수 없는 확고한 입지를 다진 뒤 장기적으로 직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전체 주식의 25%를 ‘우리사주’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 회사의 대주주가 사실상 직원들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기자가 둘러본 생산 현장은 활기와 웃음으로 넘쳐났다. 인터뷰를 위해 도착한 시간이 예상 시간보다 늦은 오후 7시쯤이었지만 직원들은 거의 퇴근하지 않고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취재진을 만난 연구원들은 들뜬 표정으로 자신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국에 9년간 파견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코엔 버벡 연구원은 “매일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현재의 나의 삶이 즐겁고 보람차다”며 환하게 웃었다.

브뤼셀=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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