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前총리 “서방과 이간질 위해 날 죽이려 한 것”

  • 입력 2006년 12월 8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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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독돼 쓰러졌다. 이 사건에는 분명 배후가 있다.”

지난달 24일 갑자기 쓰러진 예고르 가이다르(사진) 전 러시아 총리가 7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혔다.

다음은 기고문 내용.

3주간 힘든 출장으로 녹초가 돼 있었지만 22일 아일랜드 더블린에 도착했다.

세미나 개막 전 대학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콘퍼런스 홀로 갔지만 호텔로 돌아가 자리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동료들에게 “몸이 좋지 않아 방으로 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바로 눈을 감았다. 마취됐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울려대는 전화기를 들기 위해 꽤나 애써야 했다.

오후 5시 10분에 울린 전화벨이 내 생명을 구했다. 세미나 담당자가 발표 차례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대로 방에 있었더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뻔했다.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0분쯤 연설했을까. 계속 말하기가 힘들었다. 청중에게 사과한 뒤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회의장을 빠져나온 직후 복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일어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코피가 났고 입에서도 피와 토사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병원 검사 결과 심장은 시계처럼 뛰고 있었다. 혈압과 당 수치는 정상보다 살짝 높았는데 나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몇 시간 뒤 몸 상태가 급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사건을 꾸몄을지 생각했다. 나는 오랫동안 러시아 정치에 참여해 왔고, 많은 일을 알고 있다. 그 시도는 해를 입히려는 목적이 아니라 살인이었다.

러시아 지도부는 개입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전직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사망한 다음 날 다른 유명 러시아인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 지도부에 대한 분명하거나 혹은 숨겨진 적이 이 사건의 배후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와 서방 간 관계를 급격히 악화시키고 싶어 하는 이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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