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아들-딸 위해 직접 치료제 개발…크롤리씨의 사랑

  • 입력 2006년 9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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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크롤리 씨 부부가 딸 메건(왼쪽)과 맏아들 주니어, 막내아들 패트릭(오른쪽)과 함께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메건과 패트릭은 근육 마비와 호흡 곤란으로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사진 제공 월스트리트저널
존 크롤리 씨 부부가 딸 메건(왼쪽)과 맏아들 주니어, 막내아들 패트릭(오른쪽)과 함께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메건과 패트릭은 근육 마비와 호흡 곤란으로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사진 제공 월스트리트저널
아버지는 절박했다. 갓 태어난 막내아들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의사는 ‘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 살배기 둘째 딸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폼페병(Pompe disease).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지다 호흡 곤란과 전신마비로 사망하는 희귀성 유전질환. 이 세상에 치료약은 없었다.

아버지는 잘나가던 대기업 중역의 자리를 때려치웠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투자자들에게 매달렸다. 하나밖에 없는 집도 담보로 잡혔다.

존 크롤리 씨의 ‘자식 구하기’는 그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 놓기 시작했다. 3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소개된 그의 삶은 영화 ‘로렌조 오일’을 연상시키는 부성애(父性愛)의 드라마다.

정상적인 맏아들과 달리 둘째인 딸 메건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 것은 생후 4개월이 되던 1997년 4월. 아이는 구르거나 기지 못했고 우유를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다. 98년 메건은 폼페병 진단을 받았고,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막내아들 패트릭에게도 검사가 진행됐다.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발병률이 1000분의 1 미만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막내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는데….”

그와 아내 에일린 씨는 인터넷과 의학 전문잡지를 뒤지며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글리코겐을 분해하는 ‘알파-글루코시다아제’라는 효소가 부족해 생기는 이 병을 고쳐 줄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 아이는 이윽고 호흡기 튜브를 꽂지 않으면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됐다.

2000년 크롤리 씨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의 중역 자리를 내던지고 폼페병 치료제를 연구하는 신생 제약회사 노바자임으로 옮겼다. 연구 실적만 있지 경영에는 서툰 새 회사의 보유 자금은 고작 3만7000달러. 신약 개발은커녕 직원들 한 달 월급을 주기도 빠듯했다.

미 대륙을 횡단하다시피 투자자를 찾아 나섰지만 ‘말도 안 되는 연구계획’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멸과 냉소만 돌아왔다. 부부는 오클라호마의 집을 담보로 10만 달러를 대출받아 연구비를 댔다. 또 ‘어린이 폼페병 재단’을 만들어 도움을 호소했다.

매주 폼페병 환자와 부모들을 모아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어느 날 13세 소녀가 자신의 증세를 이야기하던 중 호흡 곤란 증세를 일으켰다. 튜브에 걸린 이물질 때문에 발작적으로 숨을 몰아쉬는 소녀를 보던 크롤리 씨는 숨다시피 옆방으로 가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우리 아이들은 저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이를 악문 노력으로 1억 달러의 투자금을 이끌어 냈다. 회사가 젠자임제약과 합병한 뒤 연구를 계속한 결과 최초의 폼페병 치료제 미요자임이 탄생했고, 마침내 올해 6월 FDA의 승인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남들의 2배 크기로 부풀었던 메건의 심장은 아버지가 만든 약을 투여받은 뒤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앉거나 손을 올릴 수 있다. 패트릭의 경과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 크롤리 씨는 메건을 껴안고 속삭였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니. 멋지게 커서 아름다운 여성이 될 수 있다고 했잖아….”

크롤리 씨는 현재 유전성 희귀질병 치료제를 연구하는 아미쿠스제약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이다. 그의 이야기는 ‘치료(The Cure)’라는 제목의 책으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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