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휴가 단축 증후군’

  • 입력 2006년 8월 21일 20시 11분


코멘트
미국 워싱턴 주 북서부에 있는 올림픽 국립공원에서 낚시를 하면서 1주일 간 여름휴가를 즐기는 일은 제프 홉킨스 씨 부부에게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이들은 올해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기름값이 1갤런 당 3달러를 넘어서고 고용이 불안정한 탓에 쉽사리 일터를 비울 수가 없게 된 것. 15년째 보잉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홉킨스 씨의 2006년 여름휴가는 퇴근 뒤 집 근처에서 낚싯배를 띄우는 게 고작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인들이 '휴가 단축 증후군(Shrinking-Vacation Syndrome)'에 시달리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치약이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걸릴 정도로 여행을 떠나기가 번거롭고, 고유가로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일이 전에 없이 경제적인 부담이 된 까닭이다.

미국 근로자의 팍팍한 삶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갤럽은 5월 미국 전역에서 1003명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43%나 됐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사기업 근로자 중 약 25%는 "유급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33%는 "주말을 포함해 딱 7일간만 휴가를 가겠다"고 답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의 마이크 피나 대변인은 "2주씩 휴가를 간다는 건 다 옛날 일"이라며 "일터를 비울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휴가 단축 증후군'이 심화되자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직원들이 확실하게 쉴 수 있도록 1년에 두 차례 회사 문을 닫기로 했다. 이 회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열흘, 독립기념일 무렵에 5일 정도 전 직원이 쉰다.

이 회사의 인사 담당자 바버라 크라프트 씨는 "직원들이 회의나 쏟아지는 e메일을 놓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크라멘토의 프루트리지 초등학교 교사인 티나 양 씨는 "최소 5일 정도는 쉬고 싶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여름휴가는 있지만 그간 처리해야할 업무와 회의, 프로젝트가 쌓여있기 때문.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네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