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대학]<21>美칼튼대학

  • 입력 2006년 6월 1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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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토론과 엄격한 글쓰기는 칼튼대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학생들이 학교의 상징인 굿셀 천문대 앞에 모여 수업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칼튼대
자유로운 토론과 엄격한 글쓰기는 칼튼대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학생들이 학교의 상징인 굿셀 천문대 앞에 모여 수업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칼튼대
《미국 중부 북쪽 끝 미네소타 주의 추운 산골마을 노스필드. 칼튼(Carleton)대 교내 호수 한가운데의 하트 모양 섬 메이페트에선 수요일 밤마다 축제가 열린다. 전교생이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학교에서 마련한 맥주를 마시며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다. 새 학기를 맞아 서먹하던 학생들도 이곳에서 몇 번 마주치면 금세 친구가 된다. 교수들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이렇게 쌓은 끈끈한 유대감으로 교정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은 누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금요일 오전엔 특별한 손님이 초대된다. 학교의 중심 스키너메모리얼성당을 500여 명의 교수와 학생이 가득 채우면 세계 각지에서 온 전문가의 강의가 시작된다. 주제는 아프리카 곤충생태부터 미국 정치까지 다양하다. 이곳 졸업생인 영화 ‘반지의 제왕’ 제작자 배리 오즈본 씨를 비롯해 씨티은행 국제투자 책임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등이 학교를 찾았다.》

수요일 축제와 금요일 토론회는 10여 년간 이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끈질기게 토론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 일이든 서로에게 묻고 토론하는 문화는 이 학교의 건립이념이자 전통이다. 학기 중에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휴강이 없지만 9·11테러와 같은 큰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수업은 중단되고 학생들은 성당으로 모여든다. 카트리나 태풍 피해 때도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자원봉사와 복구대책에 대해 6시간이나 토론했다.

학생회장 짐 와킨스(21·경제학) 씨는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학교의 주요정책을 결정해 왔다”며 “코카콜라의 부당고용행위가 드러났을 때도 3시간 토론 끝에 교내의 모든 자판기를 철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1866년 미네소타교회연합에 의해 설립된 칼튼대의 교육목적은 학생 개개인이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입학생들은 2년간 6학기에 걸쳐 전공을 정하지 않고 정치 역사 철학 등 인문사회과목과 수학 물리 화학 등 순수과학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지식’보다 ‘진리를 찾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칼튼대에선 자유로운 토론과 함께 엄격한 글쓰기를 요구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와 조시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원고작성 담당관이 연속해 칼튼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 학교 글쓰기 교육의 성과를 보여준다. 2학년 말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쓴 에세이와 보고서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3명 이상의 교수에게 심사를 받아야 한다. A4 10장짜리 에세이 3편과 30장짜리 논문 1편에 대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전공을 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내 ‘글쓰기센터(Write Place)’에는 항상 불이 꺼지지 않는다. 3명의 교수와 40명의 4학년생이 제자와 후배들의 작문과 리포트 작성을 도와주기 위해 24시간 교대로 대기한다. 짧은 편지부터 긴 논문까지 어떤 글이든 조언과 함께 첨삭지도를 받을 수 있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개인교습을 해 주기도 한다.

애너카 라슨(22·역사학) 씨는 “일주일에 10시간 글쓰기센터에서 일하는데 보수는 모두 학교가 부담한다”며 “하루 평균 10여 명이 지도를 받으러 오는데 칼튼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토론과 글쓰기를 강조하는 학풍으로 칼튼대는 올해 ‘프린스턴 리뷰’가 선정하는 ‘학부생에게 최고의 학문적 경험을 제공하는 학교’ 7위, ‘공부를 멈추지 않는 학교’ 11위에 올랐다. 또 전미과학재단 장학금 수상자 수는 지난 5년 연속 이 대학 출신이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칼튼대는 학생에게 상아탑 속의 공부에 몰두하라고 강요하는 곳은 아니다.

학생지원센터에서는 자원봉사나 자치활동, 현장학습에 드는 비용까지 전액 지원한다. 미니 콘서트부터 중국 문화체험, 입양아를 위한 한국문화교실들도 학생이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학교가 비용을 부담한다.

학교 곳곳엔 학생들이 기획한 연극, 영화제, 콘서트 등 공연 포스터가 빽빽이 붙어 있고 학교 안은 재미있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영화제, 세계 전통문화 페스티벌, 녹색자원 박람회 등이 모두 학교의 지원을 받아 열리는 큰 행사다.

4월 종군위안부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열어 학생들의 호응을 받은 이준호(21·경영학) 씨는 “학교에서 관련 영화감독을 모시는 비용까지 모두 지원해줬다”며 “프로그램을 신청한 정당한 이유만 밝히면 언제든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칼튼대의 가장 큰 변화는 외국학생과 유색인종이 급증했다는 것. 2000년 25명에 불과했던 외국 학생은 올해 109명으로 불어났다. 전체 학생 중 6%에 이르는 수치다. 외국 학생을 포함한 유색인종은 516명으로 재학생의 27%를 차지한다.

외국 학생이 늘어나게 된 배경에는 입학처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2000년부터 한국 일본 인도 등지를 돌며 입학설명회를 열었고 2005년에는 세계 각지의 65개 학교를 방문해 입학지원서를 받았다. 외국 학생을 위한 특별지원처도 따로 있어 항상 학업과 진로, 생활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입학처장 찰리 코건 씨는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세계의 학생들이 이곳으로 오게 해야 한다”며 “이러한 다양성이 칼튼을 칼튼답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노스필드=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독특한 오프캠퍼스 프로그램… 학생 70% 참여▼

설치미술을 전공하는 제인 라슨(23·여) 씨는 2005년 겨울 호주를 찾아 3개월간 현지 소수민족인 마오리족과 함께 생활했다. 그들의 옷과 그릇, 집과 생활도구를 보며 미술 디자인을 새롭게 연구했고 ‘환경’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눈을 떴다.

호주에서 보낸 라슨 씨의 두 번째 ‘오프캠퍼스(offcampus)’ 프로그램은 2003년 가을 독일에서 느낀 첫 경험보다 더욱 강렬했다. 연극과 뮤지컬 등 꽉 짜인 무대에서 펼쳐지던 미술과 달리 광활한 초원에서 펼쳐지는 꾸밈없는 축제는 미술과 문화를 보는 관점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 줬다.

오프캠퍼스란 학교를 떠나 다른 나라나 다른 지역에서 한 학기 동안 머물며 수업을 듣고 현지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 지난해 칼튼대 재학생의 21%는 41개국에서 펼쳐지는 133개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항공료는 학생 부담이지만 숙식과 수업료는 학교가 지원한다.

뉴올리언스의 클럽에서 재즈를 배우고, 영국에서 중세정치학을 배우며,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를 배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각지의 학교 기숙사와 홈스테이를 이용해 12주간 머물 수 있으며 칼튼대 교수가 직접 가서 해당 프로그램의 수업을 지도한다.

칼튼대 재학생의 70%는 이미 오프캠퍼스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이 중 23%는 두 번 이상 오프캠퍼스에 다녀왔다. 신입생 절반 이상이 오프캠퍼스에 지원하는데 아시아지역 연구와 경제학이 인기 프로그램이다.

오프캠퍼스를 총괄하는 헬레나 코프먼 씨는 “다양한 문화를 공부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가서 그 문화를 경험하고 오는 것”이라며 “모든 학생을 참가시키기 위해 항공료 및 생활비 지원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스필드=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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