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꽁꽁 언 한일관계… 훈훈한 한인 유학생 돕기

  • 입력 2006년 5월 8일 03시 01분


도쿄(東京)에 있는 한 미술대학에서 일본미술을 전공해 온 A(27·여) 씨는 지난달 20일 눈물 어린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을 몇 달 앞둔 A 씨에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해 11월.

A 씨는 아르바이트로 집세와 학비를 벌어왔지만 졸업작품전과 개인전에 들어갈 60만 엔을 혼자 힘으로 마련하기는 힘에 부쳤다.

A 씨는 개인전에서 그림이 팔리면 충당하기로 하고 2학기 학비를 내기 위해 벌어놓은 돈을 전시회 비용으로 털어 넣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해서 지난해 12월 간신히 개인전을 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림은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A 씨가 살던 아파트의 주인까지 나서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학교 측의 대답은 싸늘했다.

‘특별대우는 곤란하다. 4월 17일까지 밀린 학비를 한꺼번에 내지 않으면 퇴학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를 A 씨를 구원해 준 사람들은 보통의 일본인들이었다. A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지난달 14일자 요미우리신문에 소개되자 일본 전역에서 도움의 손길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조촐한 생활을 하는 노부부’가 보내온 편지에는 2만 엔과 함께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전쟁으로 한국에도 큰 폐를 끼쳤습니다. 일본에 와서 공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한 50대 남성은 “나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교를 진학하지 못했지만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정기예금을 헐어 보탰다.

또 다른 한 독지가는 “국가 간의 관계가 껄끄러울 때일수록 서로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편지와 함께 얼마간의 돈을 성의껏 담아 보냈다.

한일 관계는 이 독지가의 ‘껄끄럽다’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만큼 최근 20, 30년 사이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개선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한 유학생에게 일본의 보통 사람들이 보낸 따뜻한 마음과 2001년 지하철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당시 26세) 씨의 고귀한 희생정신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천광암 도쿄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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