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발밑에선 황토색 아마존 강이 넘실댔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초록의 바다’다. 그 위에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다.
페루 카미시아 88광구의 산마르틴 유정(油井). 한국의 정유회사 SK㈜가 연간 1억4000만 달러(약 1400억 원)어치의 기름과 가스를 퍼내고 있는 곳이다.
기자는 여기를 방문하기 위해 주사를 3대(황열, 파상풍, 인플루엔자)나 맞았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수백 km 떨어진 아마존 정글에 있기 때문에 주사를 맞았다는 증명서 없이는 출입이 되지 않는 ‘오지(奧地) 중의 오지’다.
![]() |
두두두두….
요란한 굉음을 내던 헬리콥터가 산마르틴 유정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프로펠러가 멈추자 아마존 정글에는 정적이 흘렀다.
처음엔 불기둥과 커다란 파이프, 철철 넘치는 검은 원유를 기대했다. 하지만 고요했다. 사람도 별로 보이질 않았다. 작업복을 입은 인부 3, 4명만 오갈 뿐.
옆에 있던 카미시아 광구 총책임자 에두아르도 콘데 씨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인근 말비나스 공장에서 컴퓨터와 카메라로 모든 걸 컨트롤하기 때문에 이곳은 사실 사람도 필요 없다”고 귀띔했다.
크기가 서울 월드컵경기장 2개만 한 유정에는 바닥에 특수 폴리우레탄이 깔려 있었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밀림 속 진흙이 유정의 시설물을 잠식하지 않도록 900만 달러(약 90억 원)어치의 폴리우레탄을 바닥에 깔았다고 한다. 아마존 밀림은 1년 중 절반 가까이가 하루에 한 번 이상 비가 오는 우기(雨期)다. 유정 한쪽에 5개의 ‘웰(Well)’이 보였다. 지하의 기름과 가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땅속 3000m까지 꽂아 놓은 관이다. 이를 통해 캐낸 가스와 원유를 밀림 속 파이프라인을 통해 리마와 피스코 지역으로 공급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의 기름과 가스를 퍼 담고 있다니…. 새삼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중요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 남미 최대의 가스전 개발 참여
SK㈜는 아르헨티나 플루스페트롤 등 5개 외국 기업과 함께 2000년 카미시아 88광구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상업 생산은 2004년 시작했다.
석유와 가스를 함께 생산하는 카미시아 88광구는 남미 최대의 가스전이다. 확인된 매장량이 원유 6억 배럴, 천연가스 8조7000억 세제곱피트에 이른다. 가스를 원유로 환산하면 약 14억5000만 배럴로 합치면 20억5000만 배럴에 이른다. 20억5000만 배럴은 한국이 2년 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적지 않은 양이다.
88광구 공동사업자인 SK㈜의 지분은 17.6%. 100달러어치의 기름과 가스를 파면 17달러어치가 SK㈜ 몫이라는 얘기다.
페루 카미시아 사업으로 SK㈜가 지난해 거둔 실적은 매출액 1억4000만 달러, 순이익은 5000만 달러에 이른다. SK그룹 해외석유개발사업 매출의 절반이 이 광구에서 나올 만큼 중요한 전략지역이다.
○ 해외유전 개발 장기적 안목이 중요
현지에서 카미시아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임시종(林時鍾) SK㈜ 리마 지사장은 “해외석유개발사업은 ‘잘되면 대박, 못되면 쪽박’”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사업 리스크(위험도)가 크다. 수억 달러를 들여 개발에 참여했는데 원유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경제성이 없으면 기업들은 거덜 나기 십상이다. 해외석유개발사업 성공률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다행히 페루 카미시아 프로젝트는 대박이 터진 곳이다. 카미시아 88광구에 3억 달러를 투자한 SK㈜는 2040년까지 기름과 가스를 가져올 수 있다.
이 회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두 번째 페루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계획하고 있다. 88광구와 인근 56광구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로 정제해 수출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오일헌트, 스페인의 렙솔-YPF와 손잡고 약 10억 달러를 투자해 페루 리마의 남부 해안에 있는 팜파멜초리타 지역에 대규모 LNG 공장을 건설한다.
공장이 완공돼 LNG 생산이 가능한 2009년 하반기부터 연간 420만 t의 LNG를 미국 서부지역과 멕시코에 공급하는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 SK㈜의 지분은 30%.
세계적으로 가스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SK㈜의 LNG 프로젝트는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전망이 밝다.
임 지사장은 “위험이 큰 석유개발사업에선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다보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며 “국내 기업들이 사업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카미시아=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
▼해외개발 현황…26개국 65곳서 ‘한국의 석유’ 생산▼
‘무자원 산유국(産油國).’
한국이 꿈꾸는 미래다. 석유자원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이 석유를 생산하다니….
그 열쇠는 적극적인 해외석유개발사업에 있다.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석유를 개발해 퍼오는 것이다.
한국의 해외석유개발사업은 1981년 코데코에너지가 인도네시아 마두라 유전에 처음 진출한 이후 현재 26개국에서 65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여기 참여하고 있는 곳은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를 포함해 24개 기업.
이들은 대부분 외국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지분참여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15개국 32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석유공사는 2010년까지 총 7조 원을 투자해 석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민간기업 가운데에는 SK㈜가 가장 적극적이다. 12개국 19개 광구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고(故) 최종현(崔鍾賢) 회장에 이어 아들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대를 이어 해외석유개발사업에 정성을 쏟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운영권자로 참여한 미얀마 A-1 광구가 최근 대형가스전으로 밝혀져 대박을 기대하고 있다.
2003년부터 탐사작업을 펼쳐온 GS칼텍스와 현대종합상사, LG상사 등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
지난해 한국의 ‘석유자주개발률’(전체 석유수요량 가운데 자체개발을 통해 공급하는 정도)은 4.1%에 불과했다. 해외개발사업을 통해 한국이 확보한 석유매장량은 6억9700만 배럴로 국내 원유 소비량의 1년 치(8억 배럴)도 안 된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석유개발 투자액은 총 9억 달러(약 9000억 원). 미국 정유사 엑손모빌 한 곳의 투자액이 117억 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다.
에너지전문가인 이철규(李哲揆·자원공학) 박사는 “탐사기술과 대규모 자금동원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전문 인력도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의 석유개발사업은 메이저 회사의 자금력에 따라 광구 개발권이 결정된다. 한국은 석유공사에 정부예산이 집중되는 데다 융자지원제도를 통해 민간에 배정된 금액도 1000억 원이 채 안 돼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이 박사는 “올해 한국전력과 대우해양조선이 나이지리아 광구 탐사권을 분양받으며 그 대가로 발전소를 지어주기로 계약했다”며 “자금력이 모자라는 한국은 정보기술(IT)과 중공업 등 경쟁력이 있는 사업을 석유사업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진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카미시아=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댓글 0